가을의 ‘새로운 길’

2024-10-13

강희창, 신학박사·서초교회 목사

대학에 입학하면서 고향을 떠난 이후 줄곧 서울에서 살아왔다.

대학에 입학할 때는 자연과학 분야를 선택했는데, 청년 시절의 방황을 거치면서 신학으로 돌아서게 됐다.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 청년 시절에 예전에 살았던 고향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 밤을 새우며 공부하던 그 집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어디선가 다시 희망을 찾으려 했던 시기에, 예전에 꿈을 품고 살았던 고등학생 시절의 그 방을 찾아가고 있었던 셈이다.

시내 중심지였던 코리아극장 근처에 집이 있었는데, 내가 공부하던 방은 길거리 모퉁이 쪽에 바깥채로 나 있었다. 1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길거리가 많이 변해 있었고 내가 공부하던 방은 조그만 국수 가게가 돼 있었다.

점심이 되기 좀 이른 시간에 국숫집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어쩌면 알아볼 것도 같은 할머니께서 국수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저도 예전에 이 동네서 살았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예전에 이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던 어떤 아이가 있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그 아이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는데, 가만 들어보니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 대해 말씀하고 계셨다. 물론 나를 알아보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닌 듯했다.

그때의 나는 오랫동안 방황하다가 마음을 정리할 겸 옛날의 그 방을 찾아갔던 것인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예전에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던 어떤 아이가 있었는데….”하며 지금은 훌륭한 어른이 됐을 거라던 국숫집 할머니의 말씀을 듣게 된 나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그곳에 찾아가 있었다. 그래서 자리에 앉아 있기가 어려웠다. 그런 말씀을 하신 할머니에게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어서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 훌륭한 어른이 됐을 거라던 아이와 당시 방황하던 나와는 너무 멀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앉아 있다가, 나는 별말 없이 국수 가게를 나오고 말았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큰 꿈을 품고 밤새워 공부하던 그때로부터 나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 아닐까?”, “그때의 꿈과 희망을 향해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렇게 고심하며 방황하는 동안 나는 새로운 길로 돌아서고 있었다.

그때 그 방황하던 청년 시절로부터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온 이 가을에, 나는 그날의 방황하던 그 청년을 기억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책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시때때로 절망을 보내는 것은 우리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다. 어디선가 새로운 길을 찾게 하려는 것이다.”

싸늘한 바람에 밀려다니며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어디선가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그런 가을이 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