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에 우열 없고, 인류는 하나의 종....나치가 저서 불태운 혁명적 학파[BOOK]

2024-12-20

문화의 수수께끼를 풀다

찰스 킹 지음

문희경 옮김

교양인

유대인에 대한 인종 차별을 넘어 학살을 자행한 나치 독일이 미국의 인종 차별을 모방했다는 건 잘 믿기진 않지만 역사적 사실이다. 1930년대만 해도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학교와 관공서, 극장, 수영장, 대중교통 등에서 인종 분리 정책을 시행했다.

1935년 나치가 독일의 인종법안인 뉘른베르크법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나치 관료들이 오래전부터 ‘미국 모형’이라고 부르며 면밀히 연구해 온 결과를 토대로 만든 법이었다. 둘의 차이는 차별의 대상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서 유대인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독일과 미국은 인종주의의 쌍생아였던 것이다.

미국과 히틀러 나치의 인종 차별에 가장 강력하게 정면으로 맞선 사람은 독일계 유대인 문화인류학자인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 프란츠 보아스였다. 20대 때인 1886년 미국으로 건너간 보아스는 인종 차별, 민족 차별, 남녀 차별 등 인간 사회의 온갖 차별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문화는 상대적이라고 강조하는 ‘보아스 학파’의 거두가 됐다.

보아스 학파는 이누이트족이 사는 북극 배핀섬, 태평양의 아메리칸사모아제도, 서인도제도 등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현장연구를 수행하고 인류는 전부 인간이라는 단일한 종에 속한다고 결론지었다. 인종 개념을 사회적 실체로 봐야지 생물학적 실체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보아스 학파는 성의 영역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삶은 고정적이고 배타적인 섹슈얼리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성별, 매력, 에로티시즘에 대한 유연한 관념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순수성을 중시하는 것, 이를테면 오염되지 않은 인종이나 순결한 육체, 조상의 땅에 세워진 국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은 혼합이 세상의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관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서로 다른 문화들 간에는 우열을 매기는 서열이 없으며 단지 상대적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이런 주장은 기존의 인종적, 성별적 위계질서를 뒤엎는 혁명적인 도전이었다. 나치는 권력을 잡자마자 보아스가 지은 책들을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레닌의 저서와 함께 가장 먼저 태워 버렸다. 보아스 학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판단하려는 모든 대상이 시대와 장소와 맥락에 따라 상대적이라면 옳고 그름을 어떻게 판가름할 수 있느냐는 논리로 이들을 공격했다.

보아스와 생각을 함께했던 마거릿 미드, 루스 베네딕트, 엘라 캐러 델로리아, 조라 닐 허스턴 등 제자들은 20세기의 스타 지식인이자 위대한 학자 반열에 올랐다. 이들이 현대 세계에 미친 영향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크다.

오늘날 동성 커플이 기차 플랫폼에서 당당히 작별 키스를 하고, 인종 차별은 도덕적 파멸이자 명백히 어리석은 행동으로 배척당하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면,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이 우리 사회의 일상적이고 당연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런 개념을 지켜내기 위해 싸운 보아스 학파의 지분이 상당히 클 것이다. 미국의 국제전문가인 찰스 킹이 지은 『문화의 수수께끼를 풀다』는 보아스와 그의 제자들이 가장 치열한 도덕 전쟁의 최전선에서 육탄전을 벌였던 생생한 투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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