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 승무원을 잘 대해주기로 유명한 기장님이었다. 막내였던 저에게 가장 따뜻했던 기장님이었는데…. "
지난 1일 오후 6시쯤 전남 무안국제공항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전직 제주항공 승무원 송모(33)씨는 제주항공 7C2216편을 운행했던 희생자 한모(46) 기장을 떠올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검은색 상하의 차림으로 헌화할 때까지 표정에 흔들림이 없던 그는 한 기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는 애써 눈물을 참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자주 흔들리고 한동안 허공에 머물렀다.
송씨는 지난 2019~2020년 한 기장과 함께 수차례 비행을 했다. 송씨는 “막내인 저를 잘 대해주라고 다른 동료들에게 매번 강조해주고, 이것저것 신경 써준 인간적으로 정말 좋은 분”이라고 회상했다. 이어 “같이 일했던 다른 동료들도 ‘기장님 너무 좋은 분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냐’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모두에게 잘 대해주셨다”고 덧붙였다.
이날 송씨는 서울 길음동에서 무안까지 4시간 30분을 달려 분향소를 찾았다. 송씨는 “사고 직후 기장님과 같은 이름이 있어서 놀라고 충격적이었다. 그 이름이 기장님이라는 것을 알고 너무 슬펐다”며 “전날 서울에 위치한 분향소에 두 차례 방문했지만 한 기장님을 생각하면 이곳까지 와서 추모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날 공항 계단에도 기장을 향한 추모 메시지가 붙었다. 제주 레이 오버(경유 도시에서 24시간 이내로 환승)를 함께했던 승무원이라 밝힌 작성자는 “기장님, 부기장님, 사무장님, 승무원님 마지막까지 승객분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너무 좋은 분들을 잃은 만큼 마음 깊이 애도하고 평화로운 안식을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다”고 적었다. 이어 “감사합니다, 기장님.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고 덧붙였다.
사고 현장 인근에도 한 기장을 향한 추모 손편지가 여럿 등장했다. 한 기장의 형으로 추정되는 이는 전날 손편지로 “우리 왔다. 외로이 사투를 벌였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너는 이미 너무나 훌륭했고 충분히 잘했으니 이젠 따뜻한 곳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시민은 “살리고자 최선을 다했을 기장님. 부기장님 그리고 승무원들. 정말 감사합니다”며 “모두 좋은 곳 가셔서 편하게 영면하시길 바랍니다”고 적었다.
사고 직전 한 기장의 마지막 모습으로 추정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지고 있다. 해당 영상에는 조종석 유리창 안쪽으로 한 인물이 팔을 뻗어 머리 위쪽 패널을 만지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조종석 위쪽은 유압 관련 스위치가 위치해 조종간을 당겨 마찰을 최대한 발생 시켜 충격에 대비하고자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기장과 부기장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조종간을 잡고 사투를 벌였을 것”이라며 “사고 원인을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다중결함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누리꾼들은 “최후의 순간까지 콕핏(조정석) 패널에 손이…. 당신은 최선을 다하셨으리라 믿는다” “동체착륙은 안정적으로 보였다. 손쓸 틈 없이 일어난 폭발에 너무 마음 아프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공군 학사장교 출신 한 기장은 6823시간 동안 비행한 경력이 있는 베테랑 조종사다. 2014년 제주항공에 입사해 2019년 3월 기장으로 승급했다. 지난 29일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7C2216편은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중 새 떼와 충돌 뒤 동체착륙을 시도했다. 이후 공항 활주로 외벽과 충돌한 여객기는 오전 9시 3분쯤 폭발해,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숨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동체착륙 당시 양쪽 엔진이 고장 나면서 랜딩기어, 스피드 브레이크 등의 전원이 셧다운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찬규.조수빈([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