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이 모여 이뤄내는 화합. 오는 22일 열리는 한ㆍ일 우정음악회의 지향점이다. 국적도, 악기도 다른 연주자 4인이 서울에서 만나 프레데릭 멘델스존부터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주제곡의 선율로 한 무대를 꾸민다. 한국의 피아니스트 이경미, 일본의 기타리스트 무라지 가오리(村治佳織), 바이올리니스트 우루시하라 게이코(漆原啓子) 도호학원대학 특임교수와 재일교포인 첼리스트 아라 요코(荒庸子) 센조쿠학원 교수가 주인공. 내년 한ㆍ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알리는 반가운 서곡이다.
주축이 된 두 연주자, 이경미 경남대 교수와 기타리스트 무라지 씨가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이어온 건 사반세기에 가깝다. 둘은 1995년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열린 음악 축제에서 처음 만났다. 둘의 우정은 삶의 고비를 넘으면서 탄탄함을 더했다. 이경미 교수는 2008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투병 끝에 무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뒤 무라지와 함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협연 무대를 선보였는데, 2013년 공연 1주일을 남기고 비보가 덮쳤다. 무라지가 설암 진단을 받은 것.
이 교수는 이후 무라지의 무대 복귀를 위해 발 벗고 나섰고, 그들은 2015년 한ㆍ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공연 무대에 함께 올랐다. 그리고 약 10년 후인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다시금 지음(知音)의 하모니를 선사한다. 무라지는 지난 11일 중앙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친언니와도 같은 이경미 교수와 함께 무대에서 느끼는 유대감을 관객께 다시 선보일 수 있어 행복하다"며 "서울 무대가 손꼽아 기다려진다"고 전했다.
이경미 교수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로는 이례적으로 국제정치학을 수료했다. 2008년 일본 아오야마대에서 그의 국제 감각을 눈여겨보면서 국제정치학 과정을 밟도록 초청하면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미국ㆍ일본ㆍ러시아를 넘나들며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터치를 선보였고, 특히 모차르트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그러다 주한 일본대사를 역임한 일본 외교의 거목,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가 그에게 한ㆍ일 우정 음악회를 제안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오구라 대사는 이경미 교수의 오랜 팬이다.
양국 관계가 최악이었던 2019년에도 이 교수의 한ㆍ일 우정 음악회는 명맥을 묵묵히 지켰다. 이 교수는 지난 5일 중앙일보와 만나 "피아노와 기타라는 서로 다른 악기가 한 무대에서 화합하기 위해선 우선 상대방의 소리를 잘 들으며 내 소리를 맞춰가야 부드럽고 절묘한 음색이 태어난다"며 "외교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라지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음악은 우리를 '여기 아닌 어딘가'로 데려다주는 아름다운 힘을 갖고 있다"며 "양국이 의견 차이가 있다고 해도 음악의 아름다움으로 평화롭게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첼리스트인 아라 교수도 이메일 인터뷰에서 "만국공통어인 음악을 통해 양국이 함께 무대를 꾸밀 수 있어 기쁘다"며 "언어는 다르더라도 음악의 힘을 통해 서로 감동을 전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이번 공연 레퍼토리의 스펙트럼은 넓다. 일본 작곡가가 이 교수와 무라지 2인을 위해 작곡한 '당신의 눈동자'를 포함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제곡, 고전 영화 '디어 헌터'의 주제곡 '카바티나', 멘델스존 피아노 트리오 등이 연주된다.
양국 외교가의 핵심 플레이어들은 이번 연주회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클래식 음악 연주에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되는 이번 연주회의 협찬은 이희건한일교류재단·롯데지주·JAL 일본항공이, 후원은 주한일본대사관ㆍ서울재팬클럽ㆍ경남대학교ㆍ서울가든호텔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