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금산분리 낡은 옷, 이젠 갈아입을 때다

2025-12-07

일본 최대 손해보험그룹 솜포홀딩스는 2019년 세계적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업 팰런티어에 5억 달러를 투자해 합작사를 설립했다.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구조 변화 속에 더 이상 기존 보험업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만큼 AI 시대의 핵심 자원인 빅데이터 분야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겠다는 승부수였다. 솜포는 이후에도 얼굴 사진만으로 스트레스와 혈압 등을 측정하는 기술을 갖춘 이스라엘의 유망 스타트업 비나에 출자하며 헬스케어 서비스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솜포는 올해 초 시가총액과 이익을 2030년까지 두 배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놨다.

솜포가 유망 AI 기업에 대한 공격적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의 전향적 규제 완화 정책 덕분이었다. 일본은 2019년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보험사가 핀테크 기업의 의결권 주식을 50%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또 2021년에는 보험 업무 고도화와 지역 활성화, 산업 생산성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한 9개 비금융업 진출도 허용했다. 덕분에 스미토모생명과 닛폰생명은 스타트업 전용펀드와 벤처기업 투자 전문사를 만들어 맞춤형 투자를 늘려가고 있고 다이이치생명은 재생에너지 사업까지 뛰어들었다. 닛폰생명의 경우 자산운용·종합상사·헬스케어·요양·병원·공연장·정보기술(IT)·벤처캐피털(VC) 등 본업인 보험업 외에도 20개가 넘는 사업에 진출해 있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자. 은행권과 마찬가지로 보험사들은 보험업법에 따라 비금융회사의 의결권 주식은 15% 이상 소유할 수 없다. 이미 포화 상태로 접어든 내수시장을 돌파하려면 적극적인 지분 투자나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가 시급하지만 해묵은 금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묶여 있는 셈이다. 해외 주요국들이 보험사의 자산운용 방식에 크게 제한을 두지 않은 채 사후 관리 감독에 집중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기술 혁신으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는 ‘빅블러’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본에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자동차 기업은 금융 프로그램 없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고 유통 플랫폼은 결제·송금 기능까지 갖춰야 고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 더욱이 지금 전 세계는 빅테크의 기술력과 금융권의 자본력 결합을 통한 AI 패권 경쟁이 불붙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 10월 “AI 투자에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할 수 있다”며 금산분리 규제 완화 검토를 지시한 것도 이 같은 문제 의식에서다.

정부는 대통령 지시에 맞춰 이번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금산분리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산업 투자를 위해 규제를 풀어달라는 기업의 절박한 요구를 정부도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AI 패권 경쟁 시대에는 무엇보다 자본력과 속도가 생명이다. 변화가 늦어질수록 기회는 줄어들고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족쇄가 되지 않으려면 40년 넘은 금산분리의 낡은 옷을 이젠 갈아입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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