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세금보다 공평한 세금을 원한다”

2025-05-11

‘감세 장사’ 시즌이 돌아왔다. 선거다. 게다가 이번엔 대선이다. 표심을 잡기 위한 구애의 대상은 근로소득세를 내는 2085만명의 근로자다. 헛된 약속에 그칠지라도 일단은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확대부터 물가연동제까지 각종 당근을 내걸고 있다.

과세 당국에 ‘유리 지갑’인 봉급생활자는 만만한 존재다. 원천징수하는 만큼 조세 저항이 적다. 거둬들이기 손쉬운 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소리 없는 증세’도 가능하다. 부과 기준은 그대로 둔 채 근로자의 임금만 오르면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 있다.

근소세, 상위 20%가 90% 부담

세수 중 봉급 생활자 부담만 커져

형평성과 수용성 높일 필요 있어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달 29일 발간한 ‘최근 근로소득세 증가 요인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4~24년 국세 수입은 연평균 5.1% 증가했지만, 근로소득 세수는 연평균 9.2% 늘었다. 근로자가 늘어난 탓일 수도 있지만, 세금 증가 폭이 더 가팔랐다. 2014~23년(귀속연도) 근로소득 신고자 수는 연평균 2.5% 늘었지만, 근로소득세 결정세액은 연평균 10% 증가했다.

이처럼 근로자 부담이 늘어난 건 과세표준(과표)과 소득의 괴리가 커진 탓이다. 소득세율 6~24% 구간의 과표를 2022년 일부 조정했지만, 35~45% 구간의 과표는 2008년 이후 17년째 그대로다. 이런 상황 속 임금 인상이나 승진 등으로 명목임금이 오르며 과표 상 더 높은 세율 구간으로 이동한 근로자가 늘고, 그에 따라 세수는 늘어났다. 과세 당국은 슬며시 웃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근로소득세(결정세액)는 60조원을 넘었다. 법인세(62조5000억원)에 비견할 정도로 몸집이 커지며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8.1%로 높아졌다. 경기 둔화 등으로 인한 기업 실적 악화로 법인세가 40%가량 줄어든 영향이라고 해도 월급쟁이의 ‘유리 지갑’은 그야말로 봉이란 이야기다.

더 큰 문제는 근로소득세 납세자의 편중과 집중이다. 현재 근로소득세의 90%가량을 최상위 20%가 부담하고 있다. 예산정책처 보고서는 이런 치우침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총급여액이 8000만원을 넘는 근로자는 근로소득 신고 인원의 12.1%다. 전체 총급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35.7%였지만, 이들은 근로소득세의 76.4%를 부담했다.

늘어난 근로소득 세수만 살펴봐도 일부 근로자에게 세 부담이 집중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근로소득세 결정세액(60조원)은 2014년(25조원)보다 35조원 늘었다. 이 중 84%(28조9000억원)를 총급여액 8000만원 초과 근로자들이 냈다. 근로소득세 과표에서 총급여액이 고소득으로 간주하는 8800만원을 초과하면 세율이 직전 구간에 비해 급격하게 뛰기(24%→35%) 때문이다.

실제로 세금을 내고 나면 연봉 88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실수령액이 연봉 8800만원 초과 근로자보다 많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난다는 게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월급 명세서에 적힌 연봉액이 올라도 손에 쥐는 돈이 오히려 줄고, 돈을 벌수록 ‘한계 세율’(일정 소득의 한계를 넘어서면 추가되는 세율)이 높아지면 근로 유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예산정책처가 “고소득자에 집중된 과세 구조와 부담 수준을 점검해 세 부담의 형평성과 수용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이를 위한 여러 방안 중 과표를 물가에 연동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런 만큼 우선 과표 구간을 세분화해 세후 급여의 역전 등을 막고, 과표 구간과 세율 조정을 통해 특정 계층에 과도한 세 부담은 줄여야 한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는 상황에서 2009년 이후 16년째 그대로인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확대도 마냥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먼저 누더기식 소득 공제를 전반적으로 정비한 뒤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선거 전략상 유불리만 따지지 말고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여 세수를 확보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근로소득자 중 급여가 낮거나, 근로소득세를 냈더라도 각종 공제 혜택이 적용돼 연말정산 때 이를 모두 환급받아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게 된 면세자(결정세액 0원)는 전체의 33%(약 689만명)로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높은 편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과세 폭을 넓힌다면 근로소득세율을 낮추더라도 세수에 가해지는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낙수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낸 미국의 유머 작가 윌 로저스는 “사람들은 적은 세금보다 공평한 세금을 원한다”고 했다. 물론 세금까지 적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공평하기라도 하면 “나만 세금 호구냐”는 납세자의 볼멘소리는 조금이나마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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