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95〉대화의 현지화, AI 시스템의 전략

2025-09-10

2024년 스웨덴의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23개 시장에서 35개가 넘는 언어를 지원하는 인공지능(AI) 고객 지원 에이전트를 전면에 세웠고, 출시 첫 달에 전체 상담의 약 67%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일부 시장에서 품질과 관련 대화 경험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자, 클라르나는 'AI 보완'이라는 명목으로 민감하거나 고난도 이슈는 사람이 처리하고 언제든 사람 상담으로 연결되는 옵션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공개했다. 이 변화를 두고 내부 평가에 따른 사실상 긴급 조정이라는 해석도 나왔지만, 회사 측은 AI 축소가 아니라 보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늘날 AI 시스템은 고객 지원, 동반자 나아가 치료의 영역에까지 이르는 소통 중심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AI가 일상에서 더 깊이 사용되길 기대하는 개발사의 '더 인간적인 대화'라는 주제에의 압박을 의미한다.

관련해 관련 연구자들과 대화형 UX팀은 오랫동안 미국 언어철학자 허버트 폴 그라이스의 대화 격률(Conversational maxims)을, AI가 제대로 말하도록 만드는 사실상 핵심 체크리스트처럼 다뤄왔다. 이 원칙은 화자가 서로 소통할 때 따라야 할 규칙을 제안하는데, 여기에는 필요한 만큼 말하는 양(Quantity), 거짓이나 근거 없는 말을 삼가는 질(Quality), 대화의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관련성(Relation), 모호함을 피하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서의 매너(Manner)를 포함한다.

하지만 이 같은 청사진에는 인간과의 의사소통이 매번 매우 맥락적이며, 모호함과 간접성이 정중함 또는 명료한 입장을 드러내는 등의 문화적 차이와 관련 상황에서의 사용 사례를 원칙적으로 제외하는 한계가 존재한다. 또 AI 시스템의 각각의 대화마다 사용자의 자신을 향한 사용 용도와 관련 기대를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 이는 명확성과 효율을 중시하는지, 공감 및 지지를 강조해야 하는지를 사용자에 따라 결정하기를 요구받는 상황의 연속을 의미한다. 때문에 지금의 AI 시스템의 디폴트(default)로 적용되는 저맥락 문화 및 서구 중심의 의사소통 해석에 기반한 시작은 보다 미세한 접근에의 필요를 증명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술 혁신 컨설팅사 스트라이프 파트너스(Stripe Partners)는 이에 대해 '대화 역할 정렬' 프레임워크의 선적용을 제안한다. 핵심은 격률을 세계 표준처럼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규범, 역할, 사용자 니즈에 맞게 재매핑하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의 직장, 서비스 맥락에서 주니어가 상사의 제안에 곧바로 반대하지 않고 “검토해 보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관행은 단순한 위계 복종이 아니라 조화를 위한 우회적, 비확정적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AI가 서구식 직설, 명료성을 그대로 적용하면 오히려 무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상황별 AI의 역할 조정도 필수다. 뉴스봇이나 정책 집행자는 명확성과 단호함이 '협력'의 신호가 되지만, 동반자형 코치는 상황에 따라 관련성, 양식의 격률을 완곡하게 변형해 공감의 여지를 넓혀야 한다. 더불어 커뮤니케이션은 과업, 기분, 기대, 필요에 따라 달라진다. 사용자의 상태를 감지하고 톤을 동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대화형 어시스턴트는 점차 업무 단위별로 해결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저맥락 기본값에 기대어 일을 나누는 방식은, 글로벌 확장 시 문화적 실수의 비용을 키우고 문화 적응력의 중요성을 더 크게 만든다. 문화 규범, 기대되는 역할, 사용자 니즈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원사이즈-핏-올(one-size-fits-all) 대화에서 벗어난 문화적으로 지능적인 AI 시스템으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우위를 점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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