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다 다른 봄

2025-03-30

이 시는 방에 혼자 앉아 맛있는 꿀 한 숟가락을 퍼먹듯이 몰래 읽는 시다. 제목부터 ‘간 봄’이라니, 기가 막힌다. 보통은 ‘지나간 봄’이라거나 ‘봄날은 간다’거나 ‘흘러가버린 봄’ ‘잔인한 봄’ 등으로 우회해 표현할 수도 있는데 단도직입으로 ‘간 봄’이라 하다니! 쓴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가? ‘슬픈 봄’을 노래한 이는 여럿이지만 천상병의 ‘간 봄’을 이길 수 있는 건 드물다.

당신이 이 시가 왜 좋은지 모르겠다면 봄밤에 혼자 가만가만 낭독해보라 청하고 싶다. 영혼이 영 굳어버린 게 아니라면 첫 행을 읽는 순간 목이 멜지도 모른다. 슬퍼서, 한때 우주 끝까지 갔던 스스로가 그리워서. 물론 정말 그리운 건 “사랑했던 여인”이다. 7행 중 2행이나 배당된 여섯 글자! 사랑했던 사람,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시를 끝내 아슬아슬하게 하는 건 “뜻 아니한 십 센티쯤의 뱀 새끼”다. 마음이 휘몰아쳐 사랑하는 쪽으로 쏟아질 것 같던 때, 젊은 날의 정념을 이토록 짧은 문장으로 담아, 단도(短刀)로 한칼에 긋는 솜씨라니!

시인은 ‘이제’라는 부사에 조사 ‘는’을 붙여 한 호흡을 멈춘다. ‘이제’라는 부사는 중요하다. 다음에 올 이야기에 카펫을 깔아주어 기대감을 조성한다. 잘 쓰인 부사는 감칠맛을 낸다. 이 짧은 시에 푸른 잔디밭에 띄엄띄엄 내려앉은 흰나비처럼 쓴 부사들을 보라. “한때, 이제, 좀.” 이 시 한 편에 우주가 있고, 절벽이 있고, 끝과 시작이 있다. 깊고 커서 다 보이지 않는다. 다 다른 봄이다. 다다른 봄이기도 하고.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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