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눈이 안 감겨”…찬 바람이 얼린 내 얼굴 돌려다오

2025-12-27

50대 주부 A씨는 집에서 양치를 하던 중 갑자기 귀 뒤쪽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오른쪽 얼굴의 힘이 빠지는 증상을 겪었다. 입에 머금고 있던 치약 거품이 밖으로 줄줄 새어나올 정도였다. 얼굴을 만져보니 감각이 둔해져 있고 제대로 표정을 짓기 어렵기도 했다. 하루 종일 추운 바깥에 있다 돌아온 터라 그는 혹시 뇌졸중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급히 병원을 찾은 A씨는 다행히 뇌졸중 같은 뇌혈관질환은 아니며, 안면신경마비 때문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엔 한쪽 얼굴이 뻣뻣해지거나 입이 삐뚤어지는 안면신경마비 증상을 호소하며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가 늘어난다. 흔히 ‘찬 데서 자고 나니 입이 돌아갔다’고 표현하는 증상이 바로 안면신경마비 때문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관심질병통계를 보면 가장 대표적인 안면신경마비 질환인 ‘벨마비’ 때문에 진료를 받은 인원은 한방 의료기관을 포함해 2020년 10만4961명에서 지난해 10만9732명으로 4.5% 증가했다.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하면 얼굴 한쪽을 잘 움직이기 힘들어 일그러진 표정을 짓게 되고 눈이 잘 감기지 않아 눈물이 흐르거나 눈이 뻑뻑해진다. 입술도 한쪽이 덜 움직여 물이나 음식이 밖으로 나올 수 있으며 정확한 발음을 하지 못하게 된다. 휘파람을 불지 못하고, 한쪽 혀에서 느끼는 미각이 전과 달리 둔해지기도 한다. 또 코를 찡긋하지 못하거나, 감각은 평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얼굴이 부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오성일 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안면신경마비는 한쪽 얼굴 혹은 아래쪽 얼굴이 마비되는 질환으로 크게 중추성과 말초성으로 구분한다”면서 “약 6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며 겨울철뿐만 아니라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도 쉽게 생길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뇌 이상 인한 중추성 마비와 달리

말초성은 염증·혈류 장애가 원인

이마에 주름 잡을 수 없으면 해당

발병 땐 스테로이드 등 약물 투여

물리치료 병행 땐 80% 이상 회복

한약은 최대 20일 건보 급여 혜택

벨마비로도 불리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안면신경의 염증이나 부종, 바이러스 감염, 혈류장애 등과 같은 문제로 발병한다. 한쪽 얼굴 전체가 마비되어 이마에 주름을 잡을 수 없고 입이 돌아가고 눈이 잘 감기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에 반해 중추성 안면신경마비는 뇌졸중, 뇌종양 등 뇌 속의 이상 때문에 발생하는 차이가 있다. 주로 아래쪽 얼굴에 마비가 생기기 때문에 이마에 주름을 잡고 눈을 감을 수는 있지만 사물이 겹쳐 보이거나 걸음걸이에 이상이 생기는 등 문제가 함께 나타날 때가 많다.

환자 입장에선 얼굴을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증상을 처음 겪을 때 먼저 뇌졸중 등의 이유로 중추성 안면신경마비가 발생한 건 아닌지 걱정부터 들 수 있다. 이때 말초성인지 중추성인지 구분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이마의 주름을 잡을 수 있는지 외에도 다른 전신 증상이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승아 이대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졸중 증상인 중추 안면신경마비는 말이 어눌해지거나, 한쪽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고 감각이 이상해지는 등 다양한 국소 신경학적 이상이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라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면신경은 표정을 짓거나 입을 벌리고 눈을 깜빡이는 동작 등에 관여하는 한편 눈물샘과 침샘을 조절하고 미각 기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삶의 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벨마비를 포함해 대부분의 안면신경마비는 발병 후 즉시 또는 며칠 안에 스테로이드와 항바이러스제 등 약물을 투여하고 전기자극요법·안면운동치료 같은 물리치료를 병행하면 80~90% 이상은 발병 전 상태로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안면신경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증상엔 다양한 원인이 있어 각각을 감별하기 위한 진단이 필요하다. 벨마비는 검사를 받아도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람세이 헌트 증후군처럼 대상포진 바이러스 영향을 받아 발병하는 경우, 외상으로 인한 머리뼈 골절, 급·만성 중이염의 합병증, 당뇨·고혈압·악성종양 같은 기저질환의 영향 등 별개의 원인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안면신경에 이상을 일으키는 원인 질환이 있으면 함께 치료해야 한다.

오성일 교수는 “증상에 기반한 전문 의료진의 신경학적 검사만으로도 진단은 가능하지만, 환자가 고령이거나 얼굴 마비가 양쪽에 발생했다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이 필요할 수 있다”며 “증상 발현 2주 후에 근전도검사를 진행하면 안면신경의 손상 정도를 알 수 있어 예후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방에서 쓰는 명칭인 ‘구안와사’도 급격한 기온 변화로 몸 상태가 악화될 때 나타나는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를 의미한다. 한방치료는 신경 염증을 억제하고 안면근육 기능을 정상에 가깝게 회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 침·약침·한약·추나·매선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진행한다. 가장 대표적인 침 치료는 신경 손상 부위의 혈류를 개선해 증상을 완화하고, 안면침과 매선 치료는 얼굴 비대칭이나 경직이 남아 있을 때 이를 교정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환자의 상태에 맞춘 한약을 복용할 수도 있는데, 안면신경마비가 건강보험 한약(첩약) 대상 질환이어서 연간 최대 20일까지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난방이 보편화된 요즘은 차가운 바닥에서 잠이 드는 경우가 흔치 않으나 찬 바람을 쐰 뒤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쉽게 볼 수 있다. 추위에 장시간 노출되면 면역력이 저하돼 염증이 생기기 쉽고, 주변 근육과 혈관의 잦은 수축과 이완으로 부종이 생겨 신경을 압박할 수도 있다. 예방 또는 발병 후 관리를 위해 무엇보다 보온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또 발병에 영향을 주는 기저질환을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정신적 충격이나 감정적 불안 등이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심리적 환경을 잘 관리할 필요도 있다.

이수지 경희대한방병원 안면마비센터 교수는 “안면신경 손상 정도가 심하면 불완전한 근력, 근육의 지속적 수축으로 인한 움직임 제한 등 후유증 발생 위험을 최대한 낮추는 데 힘써야 한다”며 “말초성 안면신경마비는 바이러스 재활성화나 급격한 체온 변화, 면역 저하 등으로 다시 촉발될 수 있으므로 특히 겨울철엔 면역력을 관리하고 찬 공기에 갑자기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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