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듀플러스]〈칼럼〉전문기술석사, AI시대 명문대 출신 천재보다 현장기술형 인재가 필요하다

2025-12-28

우리나라가 이뤄낸 '한강의 기적'은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 써 내려간 역사다. 기술도 자원도 넉넉지 않았던 나라가 오늘의 기술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연구인력과 이를 현장에서 구현해낸 기술인력이 긴밀히 협력해 만든 성과이다. 산업현장에서 기술의 경쟁력은 연구실에서만 완성되지는 않는다. 개발된 기술이 공정과 제품, 서비스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품질·안전·원가·표준·납기 같은 '현장 변수'가 촘촘히 걸려 있다. 현장이 체감하는 장애물은 연구 자체의 부족이라기보다, 연구 성과를 적용·검증·개선해 실제로 쓰이게 만드는 인력과 시스템의 부족인 경우가 많다. 전문기술석사는 바로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설계된 제도적 해법이다.

전문기술석사는 전문대학이 운영할 수 있는 석사 수준의 과정이다. 고등교육법은 전문기술석사과정을 이수한 사람에게 전문기술석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과정을 설치·운영하려면 교육부장관 인가를 받도록 규정한다. 또한 전문기술석사학위는 석사학위와 동등한 학력으로 인정된다고 명시한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전문기술석사는 '석사 흉내'가 아니라, 제도상으로도 명확히 석사 수준의 학위체계로 자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4년제 일반대학원 석사와 무엇이 다른가. 차이는 우열이 아니라 정체성과 평가 기준, 그리고 결과물의 형태다. 일반대학원 석사가 대체로 학문적 탐구와 논문을 중심으로 연구역량을 확장한다면, 전문기술석사는 기술 고도화와 현장 문제해결에 초점을 둔다. 고등교육법은 입학 자격을 '학사학위(또는 동등 학력)와 관련 분야 2년 이상 재직경력자'로 규정해, 학습자 자체가 현장성과 경력자격을 전제로 설계돼 있음을 보여준다. 한마디로 현업을 병행하며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고숙련 인재로 성장하는 사다리라 할 수 있다.

즉, 전문기술석사는 '처음 연구자가 되는 과정'이라기보다 '현장 전문가가 한 단계 더 숙련을 끌어올리는 과정'에 가깝다. 전문기술석사의 핵심 키워드는 '기술실증'이다. 여기서 실증은 단순 실습이 아니다. 기술이 현장에 적용되려면, 작동한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검증 가능한 데이터와 재현 가능한 절차가 필요하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전문기술석사과정 교육과정에 '고숙련 기술 전문가 양성에 필요한 실습과목'이 포함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곧 교육과정의 중심이 '이론 전달'이 아니라 '현장 적용을 위한 검증과 구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문기술석사의 성과는 논문 한 편으로만 평가하기 어렵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과물이 더 직접적인 가치가 된다. 예를 들어 공정 개선 전후의 불량률·수율·가동률 변화, 신뢰성 시험 결과, 안전·규제 적합성 검증, 시제품 또는 공정모듈의 성능 데이터, 표준작업절차(SOP)와 매뉴얼, 협력기업 적용 사례와 확산 계획 등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지식을 말하는 능력'보다 '기술로 증명하고 운영 가능한 형태로 만드는 능력'이 중심 역량이 된다.

전문기술석사의 필요성은 산업구조 변화에서 더 분명해진다. 첨단 제조든 바이오헬스든 서비스든, 현장은 점점 더 데이터 기반 품질관리와 공정 최적화, 자동화·지능화 튜닝, 현장 안전과 표준 준수까지 함께 요구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연구인력 확충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술이 '제품·공정'으로 넘어가는 마지막 구간을 책임지는 고숙련 인력이 있어야 기술 고도화가 속도를 낸다. 교육부가 전문기술석사과정 인가를 통해 '미래 산업 변화와 현장의 인력수요에 대응한 고숙련 전문기술인재 양성'을 강조하고, 마이스터대 운영을 통해 '전문학사-전공심화(학사)-전문기술석사'로 이어지는 직무 중심 고도화 체계를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제도가 취지를 살리려면 운영 방식이 관건이다. 전문기술석사가 일반대학원의 운영 관행을 그대로 따라가면, 정체성이 흐려지고 차별성이 사라진다. 반대로 다음 네 가지 원칙이 지켜지면, 전문기술석사는 고등직업교육의 '최상단 트랙'으로서 확실한 자리매김이 가능하다. 첫째, 과제는 산업체의 실제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문제정의의 정확성). 둘째, 성과는 주장보다 데이터로 입증돼야 한다(검증의 엄정성). 셋째, 결과는 현장 적용 또는 적용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해야 한다(재현 가능성). 넷째, 성과는 개인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표준화·매뉴얼화·교육콘텐츠로 확산돼야 한다(확산 가능성).

결론적으로 전문기술석사는 '논문을 위한 석사'를 대체하려는 제도가 아니다. 학문적 연구 중심의 일반대학원 석사과정과 상호보완하면서, 기술의 고도화와 현장 적용을 책임지는 '현장형 석사'를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일이다. 기술 경쟁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보고서가 아니라, 기술을 검증하고 개선하며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다. 전문기술석사는 바로 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고등직업교육의 진화다. 빠르게 고도화되는 산업 현장에서는 이른바 '명문대 출신 천재'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장을 이해하고 문제를 끝까지 풀어내는 '현장기술형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동의과학대 총장) ydkim@dit.ac.kr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회장=부산경찰청 경찰발전협의회 위원,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상임위원, 부울경·제주 전문대학총장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동의과학대 총장,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이지희 기자 eas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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