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어벤져스' 총출동…한미 3500억弗 투자 해법 급물살[Pick코노미]

2025-10-15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보름가량 남겨두고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 경제·통상 라인 핵심 멤버들이 일제히 미국으로 건너간다. 경제·통상 정책 수장들이 동시에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어서 한미 관세 협상이 중대 분수령을 맞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4대 그룹 총수도 일제히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협상을 측면 지원할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도 “한국과의 무역 협상은 마무리 단계로 세부 내용을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15일 대통령실과 산업통상부는 공지를 통해 김 실장과 김 장관이 관세 협상을 위해 16일 출국한다고 밝혔다. 구 부총리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15일 비행기에 올랐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향한다.

뿐만 아니라 한미일 경제인대화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이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이 모두 미국으로 넘어가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골프 회동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의 주역이 될 기업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만나는 것이어서 한미 관세 협상 돌파구를 찾기 위해 민관이 총력전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급 인사가 직접 움직였다는 점도 협상 타결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그동안 관세 협상을 물밑에서 주도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 실장이 미국으로 간다는 것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에 대한 해법이 어느정도 마련됐다는 신호 아니겠냐는 것이다. 앞서 조현 외교부 장관도 13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미국 측에 3500억 달러 전액 직접 투자에 따르는 문제를 다 설명했다”며 “미국 측에서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와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한 바 있다.

한미 정상이 만나 공개적으로 밝힌 3500억 달러라는 숫자를 변경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투자 방식에서 일본과 다른 해법을 적용하는 안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직접 투자 비중을 낮추거나 실제 투자액이 집행되는 기간에 여유를 두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김 실장까지 막바지 협상에 동원된 것은 한미 관세 협상이 갖는 복합체적 성격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협상은 단순히 품목별 관세나 무역장벽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외환보유액의 80% 수준에 달하는 투자 패키지를 다루고 있다. 외환시장과 환율 문제를 다루는 기재부·한국은행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주체가 많다 보니 대통령실이 총괄하는 형태로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 측에서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협상을 도맡고 있다. 국가 간 협상에서는 각자 직무상 카운터파트와 만나는 것이 관례이므로 구 부총리나 한은 측에서 러트닉 장관과 접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김 장관이 환율이나 통화 스와프 문제를 러트닉 장관과 논의하는 것은 월권이 된다.

추석 연휴 당시 김 장관이 미국을 급히 찾아 러트닉 장관을 만났을 때 귀국 전 화상회의 보고부터 마치고 대통령실은 곧바로 3실장 회의를 개최하는 등 실시간 대응을 한 것도 이 같은 사정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에는 김 실장과 김 장관이 함께 러트닉 장관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대통령실과 동시 소통하는 셈이니 보다 효율적인 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한미 양측 모두 협상 타결이 절실하다는 점도 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한국으로서는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나 관세 문제를 매듭짓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주요 수출 경쟁국보다 관세가 높게 적용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대미 수출 하락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올해 들어 매달 마이너스 흐름을 보이고 있다. 김 실장도 이날 한 유튜브에 출연해 “협상에 데드라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마무리하는 것이 큰 목표”라고 밝혔다.

미국 역시 한국과의 협상에서 진전이 있어야 중국과의 힘겨루기에서 보다 공격적 협상이 가능하다. 3500억 달러를 직접 투자할 경우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한국 측의 항변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일리가 있는 주장으로 수용되는 분위기다.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근로자 체포 사태 이후 무작정 한국에 투자를 압박하기 어려운 정치적 여건이 형성되기도 했다.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조지아주 사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직접 겨냥해 발언하는 사례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낸 이태호 법무법인 광장 고문도 “트럼프가 여러 차례 공개 석상에서 성과를 자랑했는데 합의 결과가 문서로 나오지 않아 백악관도 마냥 느긋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하면서 APEC 정상회의는 참석하지 않을 계획이라 양자 회담에서 명확한 성과가 필요한 형편”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협상의 속도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외환·금융시장에 교란을 주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둘 수 없다면 APEC 정상회의를 기점으로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무리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APEC 정상회의를 넘겨 협상이 이어진다고 해도 결국 한두 달 관세를 더 내는 차이가 아니냐”며 “협상을 통해 관세 부과 기준 일자를 소급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기한에 얽매이면 협상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고문은 “통화 스와프 문제 외에도 난제가 많은 협상”이라며 “투자 의사 결정 방식, 이익 배분 구조 등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한 디테일이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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