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탁계약에서 위탁자가 부가가치세 환급금을 수탁자에게 양도하기로 약정하고도 수령한 환급금을 임의로 사용한 것에 대해 대법원이 횡령 혐의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노경필 대법관)는 지난달 17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 등에게 징역형 또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 등은 부동산 개발 및 공급을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해 해당 회사 명의로 토지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토지신탁과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오피스텔을 신축·분양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계약 과정에서 이들은 신탁사업에 따른 부가가치세 환급청구권을 한국토지신탁에 포괄적으로 양도하고, 그 양도통지에 관한 대리권도 수여한다는 약정을 맺었다. 그러나 A씨 등은 세무서로부터 2018년 1기·2기분 부가가치세환급금을 수령한 뒤 임의로 사용하거나 반환을 거부했다. 이에 대해 A씨 등은 “2018년 부가가치세법 개정으로 납세의무자가 수탁자에서 위탁자로 변경됐으므로 계약 내용의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토지신탁은 환급금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A씨 등을 고발했고, 검찰은 횡령 혐의로 이들을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A씨 등이 한국토지신탁과의 계약관계를 넘어 실질적으로 신탁계약상의 지위에 있었고, 환급금을 정당하게 수령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018년 1월 1일 이후 신탁재산을 수탁자 명의로 매매하는 경우, 부가가치세 납세의무자는 원칙적으로 위탁자로 봐야 한다”며 “이 사건에서 문제된 부가가치세는 2018년 1·2기분이므로 구 부가가치세법 제10조 제8항 본문에 따라 납세의무자는 위탁자인 피고인들의 운영회사이고, 환급청구권도 일단 위탁자인 운영회사에 귀속된다”고 밝혔다. 2022년 1월 1일 이후 개정된 부가가치세법에 따라 수탁자가 원칙적으로 납세의무자가 되지만, 2018년 1월 당시에는 위탁자가 납세의무자로 규정돼 있었다.
이어 “한국토지신탁의 의사 역시 피고인들의 운영회사에 대해 부가가치세 환급청구권을 온전히 양도받아 행사할 수 있도록 환급금 수령 전에 대항요건을 갖춰달라거나, 수령한 환급금을 자신의 계좌로 입금해달라는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을 대신해 환급금을 직접 수령하거나 수령 후 송금해달라는 취지로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씨 등이 횡령죄의 주체인 ‘보관자’ 지위에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