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의 실각 이후 후임 총리를 물색하고 있지만 격변하는 정국 속에서 야당의 반대를 뚫고 내각을 안정적으로 이끌 인물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내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의회가 여소야대 구도인데다 마크롱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적자 축소 전략에 대해 야당이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어 난국을 헤쳐나갈 묘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누가 총리가 되도 마크롱 정책을 밀어붙였다가는 이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불신임' 장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는 단 2명의 총리만 임명했지만, 지난 2022년 시작한 2기 때는 이미 4명의 총리를 자리에 앉혔고 이제 다섯 번째 총리 임명을 앞두고 있다.
바이루 총리에 대한 의회 불신임이 결정된 8일 엘리제궁은 "마크롱 대통령이 며칠 내로 새 총리는 임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사들은 크게 네 그룹으로 분류되고 있다.
◆ 대통령 캠프 출신
마크롱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상원의원인 프랑수아 파트리아는 "이전의 실패에도 불고하고 이것(대통령 캠프 출신 임명)이 여전히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라고 전망했다. 마크롱에게는 그가 신뢰하는 동시에 야당과 노련하게 협상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유력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국방장관이 꼽히고 있다. 그는 마크롱과 아주 가까운 사이일 뿐 아니라 야당 지도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지난 2017년 마크롱이 처음 대통령이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쥘리앵 드노르망디 전 농업장관도 후보 중 한 명이다. 그가 2017년 대선 때 마크롱의 가장 큰 신뢰를 받는 측근으로 활약했다는 점 등이 강점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대통령과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야당의 반발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약점으로 평가된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 프랑스의 조사 책임자 마티외 갈라르는 "마크롱이 진정한 충성파를 임명하는 것을 어렵다"고 했다.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장관도 총리직에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범죄와 이민 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으며 노동계급의 옹호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 좌파 사회당에게 지나치게 우파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카트린 보트랭 노동·보건·연대·가족부 장관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2022년에 마크롱이 총리 후보자로 검토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현 여권 인사 중 한명을 임명할 경우 이전과 같은 결과, 즉 예산 봉쇄나 추가 내각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시나리오는 마크롱으로 하여금 조기 총선을 선택하도록 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국민들은 마크롱이 더 이상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더욱 굳게 믿게될 수도 있다. 최근 엘라베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 진영의 총리를 원한다는 사람은 6%에 불과했다.

◆ 중도좌파 사회당 출신
프랑스 중도좌파인 사회당은 작년 7월 총선 이후 마크롱 대통령에게 줄기차게 "좌파 진영 총리 임명"을 요구했다. 전체 좌파 진영에서 사회당은 극좌성향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세력이지만 LFI에 대한 프랑스 정치권의 강력한 반대를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온화한 사회당이 수권 세력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바이루 총리에 대한 신임안이 부결된 후 보리스 발로 사회당 의원은 "우리는 정부를 이끌 준비가 돼 있다. (마크롱은) 우리를 찾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당 내에선 올리비에 포르 대표가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9일 BFM TV와 인터뷰에서 "총리직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달 3일에는 "내가 총리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언제든 대통령과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당이 부유층을 상대로 막대한 재산세 부과와 마크롱의 트레이드마크인 연금 수령 연령 64세 인상의 중단 등을 주장하는 등 현 집권세력의 철학과 정책을 부정하고 있어 양측 간 거리좁히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보수당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보수 진영에서 나오는 목소리 중 하나는 중도우파 보수당 인사를 끌어들이자는 것이다.
자비에 베르트랑 의원이 대표적이다. 프랑스 북부 지역 출신 정치인으로 극우정당인 국민연합(RN)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을 내세워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보수당 출신의 임명은 이미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 사례를 통해 성공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바르니에 전 총리는 대대적인 재정적자 감소 예산안을 밀어붙였고, 야당과 격렬하게 격돌한 끝에 작년 12월 국민연합과 좌파 진영의 합작 불신임 표결로 축출됐다.
◆ 테크노크라트
후임 총리의 가장 큰 목표가 2026년도 예산안 관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문관료를 임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엘라베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유권자의 39%가 '비정치적 정부 수반'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럴 경우 에리크 롱바르 재무장관과 피에르 모스코비치 감사원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롱바르 장관은 과거 사회당 당원이었다는 점이 장점이 될 수 있고, 모스코비치는 사회당 소속이었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지냈다.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나온다. 그는 가장 중립적인 선택지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