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을 두 번 꼽는다면 누가 뭐라 해도 태어나는 날, 그리고 세상을 떠나는 날일 것이다. 별의 생에서도 그렇다. 별들도 우리처럼 태어나고 죽는다. 제임스 웹과 허블, 모든 우주 망원경은 별들의 찬란한 탄생과 죽음의 현장을 겨냥한다. 별들의 탄생과 죽음이 벌어지는 곳은 단연코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가장 아름다운 현장 중 하나다.
1990년 처음 궤도에 올라간 허블 우주 망원경이 벌써 서른네 살을 맞이했다. 사람으로 쳐도 이젠 마냥 어리지 않은 나이다. 3분의 1세기에 달하는 긴 세월 동안 우주를 관측한 덕분에 이제 허블 우주 망원경은 우주가 변화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수 년에 걸쳐 똑같은 별을 관측한 이미지를 쭉 이어 붙이면 마치 움짤 이미지를 보듯 무언가 모양이나 위치가 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별들의 삶은 인간에 비하면 무척 느리게 진행된다. 별의 수명은 수천만 년에서 수십억 년에 달한다. 그래서 고작 30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유의미한 변화를 보기는 아주 어렵다. 하지만 별의 탄생과 죽음의 순간은 별의 일생에서 가장 극단적인 순간이다. 평소 아주 느리고 차분하게 살았던 별들도 가장 격렬하고 난폭한 모습을 보인다. 허블 망원경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한 변화를 감지할 만큼 별들도 빠르게 변동한다. 최근 허블로 관측한 그 아름다운 모습이 공개되었다.
물병자리 방향으로 1000광년 거리에 떨어진 ‘물병자리 R’ 별이 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약 9년 동안 허블 우주 망원경으로 관측한 데이터를 모아 실시간으로 이 별에서 사방으로 불려 나가는 에너지 제트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곳은 이미 진화를 마친 백색왜성과 한창 진화 중인 거대한 적색거성이 함께 짝을 이룬 쌍성이다. 특히 무거운 별이 백색왜성의 로슈 한계 이내로 지나치게 가까이 들어오면서 별의 질량이 백색왜성 쪽으로 빠르게 끌려가고 있는 공생쌍성(symbiotic binary)이다.
백색왜성 쪽으로 적색거성의 물질이 다량 흡수되면서 불안정해진 백색왜성은 양쪽으로 긴 에너지 제트를 형성한다. 별 주변을 감싸고 있던 성운이 강력한 제트에 의해 불려나가면서 주변에 독특한 모습의 성운과 잔해를 만든다. 이 쌍성을 이루는 두 별은 서로의 곁을 약 44년 주기로 맴돈다. 서로 궤도를 돌면서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제트가 강해지고 별이 더 밝게 증폭되는 현상이 반복해서 벌어지고 있다. 허블이 9년간 쭉 촬영한 사진을 보면 성운의 중심에서 변동하면서 밝기가 변하고, 동시에 사방으로 물질이 퍼져나가고 있는 모습을 마치 실시간 영상처럼 확인할 수 있다.
가끔 격렬하게 물질이 분출되면서 마치 별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성이 목격될 수도 있다. 다만 실제로 물병자리 R이 있는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신성 폭발이 기록된 적은 없다. 930년경 일본 천문학자들이 이 별이 있는 자리에서 무언가 신성으로 의심되는 기록을 남기긴 했지만 확실치 않다. 이번 허블 우주 망원경 관측을 통해 파악한 별의 제트 분출을 통해 그 흐름을 거꾸로 추적하면 약 1100년 전에 강력한 폭발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중심의 적색거성은 1년 사이 최대 750배까지 밝기가 밝아지고 증폭될 수 있었으니, 그 정도라면 당시에도 충분히 맨눈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최대 몇 개월에 걸쳐 서서히 밝기가 어두워지면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요동치는 쌍성뿐 아니라 아예 별 하나가 폭발을 하면서 사라지는 초신성 폭발은 더 놓칠 수 없는 강력한 현상이다. 먼 거리에서도 그 빛을 볼 수 있다. 오래전부터 인류의 역사에 가끔씩 목격한 초신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181년 중국 천문학자들은 지금의 카시오페이아자리가 있는 방향 부근에서 갑자기 나타난 흐릿한 별을 발견했다. 이전까지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불쑥 찾아온 손님처럼 등장한 일명 객성이었다.
21세기가 되면서 천문학자들은 과거 중국 기록에 남은 이 초신성이 남긴 흔적을 찾아헤맸다. 지금으로부터 약 850년 전에 초신성 폭발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 잔해가 어딘가 남아있어야 했다. 천문학자들은 지금은 은퇴한 적외선 우주 망원경 WISE의 데이터를 시민들의 도움을 받아 탐색하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아마추어 천문학자 다나 패칙은 카시오페이아자리 부근에서 새로운 가스 잔해를 발견했다. 그가 서른 번째로 발견한 천체라는 뜻에서 Pa 30으로 이름지어진 이 천체는 바로 1181년 역사에 기록된 초신성 폭발이 남긴 잔해로 추정된다.
맨 처음 Pa 30이 발견되었을 때, 천문학자들은 비교적 가벼운 별이 죽고 남긴 행성상 성운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습이 너무 독특했다. 안에서 바깥으로 사방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기다란 촉수 같은 모습이었다. 또 중심에는 아주 극단적으로 뜨거운 백색왜성이 살고 있다. 백색왜성의 표면온도는 거의 20만 도에 달한다. 겨우 5000~6000도인 태양 표면에 비해 거의 40배나 더 뜨겁다. 이것은 지금까지 발견된 별들 중에서 가장 뜨거운 수준이다. 중심 별 바깥으로 1만 6000km/s에 달하는 아주 빠른 속도로 물질이 퍼지는 팽창이 관측된다. 이곳이 강력한 폭발로 퍼지고 있는 초신성 잔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곳이 정말 초신성 폭발 현장이라면 중요한 질문이 따라온다. 어떻게 폭발 이후에도 중심 백색왜성이 파괴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천문학자들은 아주 드물게 벌어지는 희귀한 종류인 Iax형 초신성이라고 추정한다. 이것은 무거운 별 하나가 혼자 붕괴하면서 터지는 게 아니라 두 개의 백색왜성이 서로 충돌하면서 터진다고 알려진다. 이러한 폭발은 중심에 아주 거대한 초거대 백색왜성을 남기면서 별이 폭발하더라도 완전히 파괴되지 않고 일부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죽지 않은 별이란 뜻에서 좀비 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좀비 별은 아주 불안정하다. 사방으로 강력한 항성풍을 토해내고 있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 별이 언젠가 한 번 더 초신성 폭발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Pa 30에서는 니켈 성분도 검출된다. 니켈의 존재는 왜 중심 별이 압도적으로 뜨거운 온도를 유지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 니켈의 불안정한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하면서 막대한 열을 만들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니켈의 동위원소가 방사성 붕괴하는 데 걸리는 반감기가 겨우 6일 정도다. 그래서 보통 일반적인 경우라면 니켈의 동위원소는 오래 생존하지 못하고 금방 사라져야 한다. 다만 압도적으로 높은 압력이 유지되고 있는 붕괴된 백색왜성이라면 니켈의 동위원소가 계속 유지될 수 있다. 붕괴한 니켈이 계속 다른 전자를 포획하면서 수 세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붕괴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하와이 켁 망원경을 활용한 Cosmic Web Imager(KCWI) 관측을 통해서 Pa 30 초신성 잔해를 더 면밀하게 관측했다. 흥미롭게도 이 촉수 구조들은 처음 사방으로 튀어나간 이후로 지금까지 딱히 속도가 줄지 않고 계속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사방으로 탄도 미사일을 날린 것처럼 물질이 퍼지고 있다. 오래전 중심에서 아주 크고 무거운 물질이 직접 발사되면서 남은 흔적이라는 뜻이다.
이 영상은 최근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초신성 잔해 Pa30의 3D 모델이다. 특히 천문학자들은 적외선 영역에서 확인된 분광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촉수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빠르게 퍼지고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우리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촉수와 멀어지는 촉수를 확인했고, 이를 3D 입체로 구현했다. 사방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다양한 촉수의 한가운데에 아직 죽지 않고 남아 있는 뜨거운 백색왜성이 덩어리져 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촉수의 물질들은 약 800년 전부터 각각 한 방향을 따라 곧게 날아가고 있다. 촉수가 퍼지는 속도와 방향을 거꾸로 추적한 결과,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물질이 중심에 모여드는 시점은 대략 1151년±75년이다. 즉 1151년 즈음에 실제로 초신성 폭발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문헌에 기록된 시점과 잘 들어맞는다.
이번 추가 관측은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우선 초신성 잔해 한가운데에는 상대적으로 물질이 적은 텅 빈 공동이 존재한다. 촉수를 그리면서 퍼지고 있는 물질들은 맨 처음에 초신성 잔해의 정확히 한가운데에서 퍼지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약간 중심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말해서 과거 원래의 백색왜성이 있던 자리에서 퍼진 것이 아니다. 중심의 초신성 폭발이 벌어지고 그 영역을 감싸고 있던 일종의 껍질 구조가 확장되면서 사방으로 아주 강력한 탄도적 방출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촉수를 그리며 퍼지고 있는 탄도의 속도와 사방으로 퍼지고 있는 가스 잔해 자체의 속도에도 큰 차이가 발견되었다. 중심 백색왜성에서 방출되는 가스 물질은 거의 16000km/s의 아주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 반면, 사방에 기다란 촉수를 그리면서 퍼지는 물체의 속도는 10분의 1 수준도 되지 않는 600~1000km/s에 머무르고 있다. 이것은 탄도적 방출을 당한 물체가 일반적인 가스 물질보다 질량이 훨씬 무겁기 때문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대포알의 정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기 어렵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번 3D 입체 지도를 그리기 위해 파악한 속도 분포를 보면 이 탄도적 방출의 속도 분포가 완벽하게 대칭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사방으로 퍼지는 촉수의 속도는 방향에 따라서 40% 정도까지 차이가 난다. 특정 방향으로 더 빠르게 물질이 방출되는 상당히 비대칭한 폭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놀랍게도 고대 인류가 무언가를 목격하고 흥미롭게 기록한 바로 그 자리의 밤하늘을 지금 다시 선명한 망원경으로 바라보면 무언가 오래전에 터지고 남은 듯한 잔해와 흔적을 볼 수 있다. 인류에게는 수십 세대나 지나 아주 긴 간격을 두고 벌어진 사건이었지만, 천문학적으로 보면 우리는 천 년째 계속 똑같은 현상 하나를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오래전 폭발이 벌어졌고 여전히 그 잔해가 우주 공간으로 퍼지고 있다. 우리는 1000년 전 조상들과 별 하나의 폭발로 연결되어 있다. 똑같은 자리에서 터진 똑같은 별은 여전히 천 년 넘게 지구에 살고 있는 인류에게 놀라움을 준다.
특히 별의 죽음과 탄생은 우주에서 가장 역동적인 순간이다. 보통 수천만, 수억 년 스케일로 벌어지는 다른 현상과 달리 별의 죽음과 탄생은 비교적 인간적인 수십년 수백년 스케일로 변화가 벌어진다. 그래서 인류가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하면 충분히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우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
https://www.keckobservatory.org/dandelion-supernova/
https://esahubble.org/videos/v-r-aquarii_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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