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생중계 업무보고가 마무리됐다. 이를 보고 신선함을 느낀 시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관료들의 본모습이 100% 공개되지는 않았겠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던 논의를 보이는 곳으로 꺼내 놓은 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시도였다. 대통령과 공무원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박근혜나 윤석열이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기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관료 조직의 작동 방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개입이 어떤 효과를 발휘할지도 정확히 예측한다. 현 정부는 ‘일 잘하는 대통령’의 실제 모습을 각인시킬 좋은 기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일을 잘한다’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일까?
‘일 잘하는 대통령’의 의미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는 포괄임금제, 야간노동,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이 논의됐는데 하나하나가 쉽게 손댈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현실에 존재하면 안 되는 노동 형태다. 노동 제도의 토대 중 하나가 임금 노동자와 비노동자의 구별인데, 한국의 기업은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만드는 꼼수를 쓰면서 그런 토대 자체를 무너뜨렸다. 국가도 이를 오랫동안 묵인했다. 결국 노동 제도의 체계성 자체가 파괴되고,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된 거대한 노동자 집단이 출현하게 됐다.
심지어 이들의 수는 통계에도 명확히 잡히지 않아서 조사 방식에 따라 수십만명에서 수백만명까지 변한다. 이들을 노동 사고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로 둘 수는 없으니, 정부와 국회는 뒤늦게 산업안전보건법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범주를 추가하고, 시행령에 해당 업종을 나열하는 식으로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를 도입했다. 이 역시 일종의 꼼수라 할 수 있는데, 제도 외부의 노동자를 제도 내로 포괄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 조치만 도입하는 식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노동 시장의 부조리와 제도적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결과물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과 고용노동부 장관의 대화를 들어보면 몇 가지 합의된 전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 제도의 기본 틀에는 크게 손대지 않고, 심각한 정치사회적 갈등은 회피하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제도적 개선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과연 뿌리 깊은 부조리를 해소할 수 있을까?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는 탈모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화라는 주제가 재등장했다. 이는 단순히 ‘찬성·반대’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질문은 어떤 원리에 따라 건강보험을 운영할 것인지다. 대통령은 젊은 층도 건강보험료를 내니까 그들도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했는데, 과연 이것이 건강보험 운영 원리로 타당한 논리인가? 업무보고 자리에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안은 다뤄지지만, 제도의 원리라는 더 근본적인 수준의 문제는 논의되지 않는다.
생중계 업무보고는 대통령의 뛰어난 업무 능력과 함께, 그것이 정확히 어떤 성격의 능력인지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경험 많고 노련한 기계 관리자와 비슷하다. 관료 조직이라는 거대 기계의 작동 방식을 훤히 꿰고 있으며, 언뜻 보기만 해도 어떤 부품이 어떤 문제를 가졌는지 정확히 파악해낸다. 간단한 터치 몇 번으로도 고질적인 문제를 간단히 수리한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기계의 원활한 작동에 있을 뿐, 더 근본적이거나 거시적인 수준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기계의 설계 자체가 잘못돼 있더라도 최대한 고쳐 쓰는 방법을 선택할 뿐이다. 이미 존재하는 구조와 체계를 불변의 조건으로 두고, 개별 요소의 부분적 재배치와 교체만 시도하는 것이다. 이것만 해도 과거 대통령에게 없던 탁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기존 질서의 근본적 재편을 요구하는 복잡한 문제는 이번 정부에서도 방치될 가능성이 높다.
방금 지적한 현 정부의 특성을 좀더 일반화하면, ‘행정으로 정치를 대체하려는 경향’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정치란 공동체의 삶을 운영하는 활동이고, 행정이란 국가 조직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일이다. 정치가 목적이라면 행정은 수단이다. 이재명 정부는 수단의 효율적 관리와 사용에는 탁월함을 보여주지만, 정치적 수준에서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인구 감소에 대한 태도다.
최근 합계출산율이 조금 반등했지만 ‘한국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 힘든 곳’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한국의 현 상황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것이 바로 인구 감소다. 이는 정치와 사회의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이고, 여기에 필요한 사람은 유능한 행정가가 아니라 유능한 정치가다. 뛰어난 업무 능력을 갖춘 관리자보다 공동체의 미래를 상상하고 기획할 수 있는 지도자가 더 절실하다.
그동안 온갖 황당한 ‘저출산 정책’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재명 정부가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그럼, 현 정부는 어떤 관점에서 인구 감소를 다루고 있는가? 명확히 알 수 없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 문제에 관한 언급 자체를 듣기 힘들다. 그래서 인구 감소를 이미 정해진 미래로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행정적 수준의 노력으로는 별다른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고, 그렇다고 정치적 수준에서 근본적 변화를 시도할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적당히 침묵하면서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가? 이런 식으로 대응해도 당장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대의 강점을 보여주는 것은 기존의 국가 조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들이다. 반면 인구 감소, 불평등, 복지국가, 차별금지법, 노동시장 이중구조 같은 것들, 즉 본래적 의미의 ‘정치적 토론과 설득’이 필요한 의제에는 매우 소극적이다. 현 정부가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목격하게 될까? 유능한 정부 조직, 부정부패와 특혜의 제거, 주가지수의 상승, 원활한 외교관계 등일 것이다. 그럼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행복한 사회’도 기대할 수 있을까? 현 정부의 지난 반년을 봐서는 긍정적으로 답하기 힘들다. 삶의 조건이 특별히 더 나빠질 것으로 생각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더 좋아질 것이라 예상하기도 어렵다. 시민들이 내란이라는 긴급한 위협을 제거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원래의 문제들이 그대로 놓여 있다. 이제 새 정부와 여당의 해법이 무엇인지 질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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