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흔의 조해용 공인회계사는 서울에서 10여 년 회계사 훈련을 받은 뒤 4년 전 고향인 울산으로 내려와 소속된 법인의 울산분원을 냈다.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는 울산 유일의 회계법인이지만 숫자를 보며 세상을 읽어내는 게 재미있어 개인이든 작은 기업이든 큰 기업이든 지원사업이든 일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일을 할 때 공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공익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하는 그는 100번 이상의 선을 본 뒤 늦깎이 결혼을 했고, 도자기와 그릇에 애착이 있으며, 내년 3월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울산세무서와 마주 보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Q. 회계사라는 직업을 어떻게 갖게 됐나? 그리고 어떤 일을 하나?
어릴 때부터 법과 숫자에 관심이 많았다. 엄밀히 말하면 ‘논리적인 것’에 이끌렸는데, 나는 법보다 수의 논리가 더 매력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계사가 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조금 오래 걸렸지만 난 이 일을 무척 사랑한다. 감사, 세무, 가업, 상속 등 이와 관련한 각종 컨설팅 등 법과 숫자와 연관된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 회계사다. 업무의 범위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범주가 넓다. 회계 쪽에도 일하는 방식에 있어 일종의 경향 같은 게 있는데, 울산은 대기업과 공기업이 많음에도 중앙에 비해 경제 규모에서 차이가 커서 이를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에서 배워온 국제 규격의 최신 회계 흐름을 울산에 적용해 내 고향의 경제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Q. 회계사라는 직업은 익숙한 듯하면서도 명확하게 정의하기가 어렵다.
직업에 관한 강의 요청이 많이 들어오는데, 어떻게 설명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요리에 비유를 해봤다. 회계사의 도움이 필요한 의뢰인들은 재료를 가지고 있고 레시피는 우리가 가지고 있다. 카레를 만들려면 양파도 필요하고 카레 가루도 필요하고…. 그걸 의뢰인들이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섞을지를 모르는 거다. 빠르게 만드는 매운 카레를 원할 수도 있고 느리게 만들 심심한 카레를 먹고 싶을 수도 있다. 회계사는 의뢰인이 원하는 상황에 맞춰 가장 합리적인 레시피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Q. 그렇다면 회계사는 국가로부터 의뢰인의 이익만을 위한 존재인가?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직명 앞에는 ‘공인’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독립성을 가지고 준수해야 하는 잣대가 있는 직업군이라는 뜻이다. 회계사의 일을 크게 ‘감사’와 ‘세무’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인 ‘감사’는 무조건 공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언제나 금융당국의 규제를 받는다. ‘세무’에서는 고용 주체에 따라 업무가 완전히 달라진다. 국가기관에서 우리를 고용하면 납세자들의 세금을 더 많이 가져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납세자가 고용하면 납세자의 이익을 더 많이 고려한다. 우리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 같은 직업군이다.
Q.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돈에, 아니 숫자에 감정이 있나?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인데, 틀린 숫자는 숫자가 또는 종이가 떨고 있다고 표현한다. 숫자의 가로와 세로, 대각선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논리가 개입된다.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1의 단위에서라도 반드시 틀릴 수밖에 없다. 그때 우리가 하는 말이 숫자가 떨린다는 것이다.
Q. 꼼꼼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오류란 일종의 쾌감인 경우가 많다. 숫자 오류를 보면 여러 가지 인문학적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손가락 실수인가, 아니면 고의인가, 하는.
우리는 작업할 때 감정을 섞지 않는다. 숫자에 인정(人情)을 담는 순간 우리는 공인이 될 수 없다. 숫자 하나하나의 객관성과 문서 전체의 논리성만을 볼 뿐이다. 회계상의 오류는 단순 실수에 해당하는 인적 오류가 가장 많다. 서울에서 선배 회계사들이 감사를 위해 종이를 500장 정도 뽑아서 계산기 두드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기장한 사람의 오류뿐만 아니라 검증하는 사람에게도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엔 엑셀 같은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을 써서 아날로그식 인적 오류는 거의 없지만 기계적으로 숫자를 입력하는 단순노동 과정에서 오류가 종종 발생한다.
Q. 부인의 직업은 뭔가?
작은 회사에서 사무를 본다.
Q. 부인이 조 회계사에게 감성이 메말랐다거나 직업병이 있다는 등의 말을 한 적이 있는가?
아내 성격이 나보다 더 건조하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서 작은 모니터를 보며 작업하고 있을 때 아내가 옆에서 화면을 슬쩍 보더니 구토증이 인다고 했다. 큰 화면으로 펼쳐놓으면 숫자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만 작은 화면에서는 훈련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저 숫자를 어지럽게 뿌려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작은 화면에서 점처럼 몰려있는 숫자들을 보며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Q. 감정적 동조가 필요한 경우, 예컨대 누군가 울고 있으면 무조건 달래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왜 우는지, 울음을 그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울지 않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조 회계사는 후자인가?
그렇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많이 하는 MBTI로 치면 나는 T다. F가 감정적인 성향이라고 할 때 T는 사실관계만 파악하는 성향이다. 난 극단적인 T이고,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중시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 방법에 집중한다. 해답을 찾아냈을 때의 만족감은 짜릿하다.
Q. 아이가 몇 살인가?
늦게 결혼해서 곧 태어난다. 회계사가 가장 바쁜 3월에 태어나는 효자다.
Q. 아이가 6개월째 걷는다고 한다. 조 회계사 부부의 아이는 3개월 만에 걸을 것 같다.
나도 아내도 성격이 급해서 정말 3개월 만에 걷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고, 둘 다 MBTI에서 감정이 메마른 T라서 T++ 아이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도 하고 있다.
Q. 부인을 어떻게 만났나?
결혼에 대한 내 목표는 마흔 전에 하겠다는 것이었다. 선도 많이 봤고 소개팅도 많이 했다. 젊을 땐 조건을 많이 따졌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선을 보는 게 익숙해져서인지 나이 탓인지 상대의 인적 사항을 물어보기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관심이 있는 것에 대해 상대의 생각이 뭔지 물어봤다. 아내를 만날 즈음에 난 도자기와 그릇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여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별로 안 좋아했다. 근데 아내는 내 관심사에 호응을 해줬다. 정말 착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착한 마음에 감동받았다.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무척 행복하다.
Q. 부인을 만나기 전까지 선은 몇 번 봤나?
100번이 넘어가면서 더 이상 헤아려보지 않았다.
Q. 부인과 함께 파안대소한 일이 있나?
얼마 전 일이다. 둘이 저녁에 산책했다. 손잡고 걷다가 손이 시려 잡은 손을 내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아니라 아내가 넣었다. 그래서 내가 잡은 손을 내 호주머니에서 아내 호주머니로 옮겼다. 아내가 왜냐고 묻기에 이렇게 해야 다른 사람이 볼 때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냐고 말했다. 아내가 빵 터졌다. 또 얼마 전에 서울 출장으로 주말 동안 울산을 비우게 돼서 아내와 함께 갔다. 북촌을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갔는데 아내가 배가 불러서 힘드니 많이 걷지 말자고 했다. 그래서 내가 등배운동을 하며 데려가겠다니 또 빵 터졌다. 그땐 나도 함께 웃었다.
Q. 웃었던 때를 하나하나 기억할 만큼 평소에 잘 안 웃나?
요새는 웃음기가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연애할 땐 사소한 하나하나에도 다 웃었는데.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가 보다.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고, 앞으로 우리 가족의 미래를 생각하고, 또 수많은 일과 그 사연들을 생각하고….
Q. 자녀 계획은?
일단 첫째를 빨리 낳고, 가능한 한 둘째도 빨리 낳고 싶다. 얘들이 대학 가고 결혼할 때까지 지켜보려면 일흔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어서 요즘 걱정이다.
Q. 울산이 학연, 지연, 혈연을 많이 중시하는 것 같다. 울산 출신인가?
그렇다. 나도 서울과 부산에서 똑같이 느꼈다. 부산에 정착하려 했는데 포기하고 울산으로 오게 된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가 부산인데 그런 것들을 크게 따졌다. 오랫동안 울산을 떠나 있었지만 내가 여기 출신이고 고등학교를 여기서 나왔다는 게 울산에 다시 정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울산시민으로서 울산에 산다는 것이 만족스럽다. 타지에서 맺은 인연들이 내 직업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Q. 지원사업 회계 검증도 많이 했다. 수혜자들과 전화 통화, 전자우편, 대면 상담을 많이 해봤을 텐데, 각종 지원사업에 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해달라.
정산 업무를 오래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지원금이 수혜자가 진행하는 사업의 일부가 되어야지 전부가 되는 데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사업에 일종의 동력이 되어야 하는데 지원금 자체를 수익으로 보게 되면 연속성과 진실성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런 지원사업은 창업지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사업자등록증을 처음 내는 이들이 사업과 운영에 대해 개념이 부족해서 단 한 번에 중단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둘째, 지원금의 지역 간 경계가 명확한 경우가 많다 보니 한 지역에서 통과한 아이디어를 다른 지역에서 똑같이 낸 뒤 같은 내용으로 중복해서 지원금을 받는 사례도 제법 많다. 지원금을 생활비 또는 주 수입원으로 생각하는 이런 구조는 국가 지원 정책의 목표나 목적과도 맞지 않다. 그래서 지원사업은 검증된 이들이 더 큰 날개를 달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지원사업의 목적과 목표에 더 부합하지 않을까 싶다.
Q. 사업자등록증을 처음 내고 지원도 처음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 어땠나?
아주 사소한 건도 일일이 전화해서 물어본다. 30명을 10분씩만 상담해도 300분이다.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선정된 뒤 이런저런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교육을 좀 더 확대해서 지원사업의 문턱을 조금 높여보는 건 어떨까 한다. 사업의 운영과 회계 교육을 받거나 운영을 해본 이가 지원사업에 응모할 수 있게 한다거나, 선정 과정에서 회계사가 심사위원으로 들어가 예산 타당성을 미리 확인한다거나, 선정 이후 별도로 회계와 관련한 교육을 받게 한다거나. 당장은 별도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는 것 같지만 수혜자 사업의 연속성에 도움이 되고, 지원 기관도 오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므로 장기적 관점에서 실효성이 있다. 지원 기관이 이에 관해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정책에 반영했으면 한다.
Q. 지원사업을 회계 검증을 하면서 수혜자와 지원 기관 양쪽을 모두 겪어봤을 텐데, 제언이 있나?
처음에 뽑을 때도 그렇고 마지막에 정산할 때도 그렇고, 기관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롭고 창의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안전하게 통과한 사람 또 뽑아주고, 그게 고착되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가장 큰 듯하다. 결국 경쟁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서 지원금을 수입의 전체로 생각하게 되고, 결국 지원사업의 수혜자 양은 적고 효과의 질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게 아닌가 싶다. 지원사업에 응모하는 이들이 경쟁할 수 있는 구도, 그 구도를 만들 수 있는 교육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와 함께 심사위원의 전문성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Q. 지원사업 회계 검증에서 주의할 일이 있다면 제시해 달라.
첫째, 지원사업은 예산서대로 한다면 방만한 경영은 없다. 그런데 집행 과정에서 급여 부분을 가장 손대기 쉬워서, 비일비재한 일이 지원금이 남으면 반납하는 게 아니라 성과급 등으로 나눠 가지는 것이다. 지원 기관에서 잘 모르는 경우가 있고 수혜자도 잘 몰라서 그냥 쓰기도 하는데 이런 건 부정수급이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둘째, 가족 간 거래를 조심해야 한다. 직계는 성이 같으니 금세 들키는데 장인, 장모 등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내면 눈치채기가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다 걸리니 역시 조심해야 한다.
Q. 가족 간 거래는 특별한 경우를 예외 조항으로 두고 진행할 수 있지 않나?
가족과의 거래는 특수관계자 간 거래는 이론상으로 실제 용역과 재화를 주고받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실상 부정을 저지르기 쉽고 잡아내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어서 100개의 물품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치자. 그럼 100개를 만들고, 포장하고, 운반하고, 납품하는 모든 과정을 증거로 남기면 역시 이론상으로는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증거를 모두 수집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판단하는 것 역시 어렵다. 무엇보다도 대안이 있다면 가족 간 거래는 지원 정책의 목적·목표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지원사업은 결국 너와 나 이외에 3자가 봤을 때 타당하다고 인정될 수 있어야만 한다.
Q.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소개한 김에, 울산저널 독자들을 위해 회계 상담을 해줄 수 있나?
나도 업무가 많아서 모든 때 모든 사안에 관해 무조건 상담해 준다는 약속은 할 수가 없다. 단, 전자우편이나 전화 통화 정도는 가능하다. 당연히 사전에 약속을 잡고 가벼운 대면 상담도 가능하다. 전자우편은 언제든 보내도 좋고, 보내실 때 울산저널 독자라고 해주면 더 빨리 답장을 드리겠다. 전화 통화는 가급적 오전 10시 전후나 오후 5시 전후가 좋다. 하지만 본격 상담과 용역은 제 능력만큼 비용을 청구하겠다.
Q. 2025년 지면 개편에서 월 1회 이상 칼럼을 쓰는 것은 어떤가?
기꺼이.
Q. 마지막으로 자기 자랑할 시간을 드리겠다.
그럼 사양하지 않고 말씀드리겠다. 울산에서 유일하게 상장사를 감사할 수 있는 법인에 소속된 회계사이다. 현재 울산에서는 스타트-업 기업들이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기업의 대표들은 주식을 상장하거나 회사를 크게 키우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회사 기초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것이다. 이때 역량 있는 회계사가 필요하다. 당장 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일에 비용을 들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은 회사의 1년, 2년, 10년, 100년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첫 단추이다. 국제 규격의 회계 트렌드를 울산에 적용하려는 나는 회사의 기초 설계에 적합하고, 법인과 인적 네트워크도 탄탄하다. 이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현재 유니스트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말만 들으면 삶이 참으로 건조하고도 재미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숫자에 대해, 논리에 대해, 그리고 공익과 정의에 대해 순수한 마음과 자세를 가진 조해용 공인회계사는 젊은 패기와 함께 노련한 전문가로서의 면모를 함께 갖추고 있다. 자기 발전을 위해 꾸준히 경주하고 숫자에서 인문학적 성찰을 하는 그가 울산의 경제를 위해 건강한 회계인으로서 헌신하게 될 삶을 응원한다.
이민정 기자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