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 쇼핑몰 상품 페이지 앞에서 종종 예상치 못한 가격과 마주하곤 한다. 분명 ‘이 정도 가격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그보다 높은 경우가 허다하다. 가격 외 판매자 신뢰 정보는 부족하고, 합리적 가격대의 다른 상품을 찾아다니긴 번거롭고. 이런 경험은 비단 특정 상품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물병원 진료부터 택시 요금, 심지어 매일 접하는 식료품까지, ‘부정적 가격 기대 불일치’는 우리의 소비 공간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특히 구매와 사용 경험이 분리된 온라인 환경으로 옮겨올수록 불일치도는 더욱 커지곤 한다. 온라인에서 상품 정보를 탐색하고 가격을 비교하지만, 결제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을 마주하며 실망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배송을 받아봤더니 품질은 불만족스럽고 반품이 안 되는 경우도 적잖다. 이는 판매자에 대한 신뢰도 하락, 나아가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온라인 쇼핑몰의 ‘부정적 경험’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저소득층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다가간다. 한정된 예산으로 생활하는 이들에게 예상보다 높은 가격과 기대 이하 품질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경제적 부담과 좌절을 안겨준다. 기대했던 가격과 지불 가격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시장 자체에 대한 불신도 높아진다. 얇은 지갑으로 장을 보러 간 사람이 예상보다 비싼 채소 가격에 발걸음을 돌리는 것처럼 그들의 실망감은 더욱 깊고 쓰릴 수 있다.
AI 쇼핑 에이전트 시대가 오고 있다. 구글, 아마존, 알리바바에 이어 오픈AI와 퍼플렉시티가 AI 브라우저를 무기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이 개발했거나 개발 중인 AI 쇼핑 에이전트는 가격 변동을 추적하고, 예산선 안에서 구매나 구매 협상을 대행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반품 조건, 정시 배송, 고객 리뷰 등 판매자의 신뢰 정보도 대신해서 분석한다. 무엇보다 방대한 양의 가격 변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설정된 예산선 안에서 최적의 제품을 추천하고 구매해준다. 이 과정에서 판매자 AI와의 ‘가격 협상’도 대리한다. 정보 비대칭이 초래한 ‘기회의 불균등’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게 된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구매자, 즉 소비자가 활용하는 AI 쇼핑 에이전트의 기술적 역량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를 보면, 추론 기능이 탑재된 고급 AI 모델일수록 협상력이 뛰어나고 구매자의 이익을 최적화해 준다고 한다. 물론 한계도 지적돼왔다. AI 쇼핑 에이전트가 상대방과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협상 루프에 갇히는 ‘협상 교착 위험’이나 예산 제약을 무시하고 초과 지출을 감행하는 ‘제약 위반 위험’ 등이 여전히 상존한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는 AI 모델이 고도화할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온라인 쇼핑에 익숙하지 않을수록, 상품에 대한 정보와 지식이 불충분할수록 소위 ‘뒤통수’를 맞을 확률이 높다. 그간 경제적 약자라 할 수 있는 저소득층과 고연령대 구매자 사이에서 이러한 피해 경험이 두드러졌다. 빅테크 온라인 쇼핑몰의 높은 알고리즘 협상력, 불충분한 정보 제공 등으로 인해 이들의 최적 소비는 지체되거나 지연됐다. AI 쇼핑 에이전트는 이러한 빅테크 쇼핑몰의 의존성에 균열을 가져올 수도 있다. 작지만 신뢰 높은 판매자를 ‘우연히’ 발견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AI 쇼핑 에이전트가 만들어낼 균열은 단순한 쇼핑 행위의 변화가 아니라 소비 권력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일 수도 있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