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인 이금희는 ‘말’의 힘을 믿는다. 36년간 마이크 앞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고, 이어온 그는 “요즘 세대는 표현은 당차지만 마음속엔 불안이 많다”고 말한다.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진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번엔 책으로 소통을 시도했다. 소통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를 펴낸 이금희 아나운서를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요즘 강연을 다니며 기업이나 지자체 담당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씀이 있어요. 2030 세대를 대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인사 업무나 사내 교육을 담당하는 분들이 대부분 4050 세대 거든요.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나누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책을 내게 됐어요.”
이 아나운서가 나름 젊은 세대를 “안다”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1999년부터 22년 6개월간 모교인 숙명여대에서 겸임교수로 강단에 섰고 약 1500명의 학생들과 하루 30분씩 1대1 티타임을 가졌다. 36년 차 아나운서로 후배들의 고민 상담을 해온지가 수십 년, 진행 중인 라디오를 통해서도 실시간으로 다양한 세대의 사연을 듣다 보니 요즘 젊은세대가 얼마나 미래를 불안해하는지, 또 얼마나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지 이해하게 됐다.
가까워지고 싶지만 불통을 겪는 세대 간에 징검다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아이디어를 냈다. 후배와 제자들, 주변의 도움을 받아 2030세대 48명을 만났다. 전화로, 이메일로, 직접 만나 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 나온 것이 <공감에 관하여>다.
그는 “요즘 2030이 당차고 자기표현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은 회사 상사나 어른들을 어려워하고 눈치도 많이 본다”라며 최근 한 강연장에서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는데 미리 받아본 질문 중 대다수가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미움받지 않을까요’였다는 것.
“요즘 젊은세대를 바라보는 사회적 분위기가 좀 그렇잖아요. 어쩐지 선배들이 자기를 미워할 것 같고 두렵다 보니 자기 방어가 강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모습이 선배들에겐 ‘당차고 할 말 다하는 요즘 세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

그는 먼저 상대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이해하고 우리가 서로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에서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형제자매, 이웃들과 부대껴 살며 어른을 대할 기회가 많았던 예전 세대와 달리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 외 어른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후배 세대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 시기를 거쳐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 새내기들은 더욱 어려운 점이 많다.
“믿기지 않겠지만 아직도 회사에서 후배 직원을 ‘미스리’라고 부르고, ‘나 정도면 오빠냐 삼촌이냐’ 묻는 상사가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확실히 거부 의사를 표현하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고 끙끙 앓는 경우가 많아요.”
인생을 먼저 산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데 잔소리하는 ‘꼰대’로 불릴까 염려된다면 “걱정 대신 격려”가 답이다. 힘이 되어주고 싶다면 상대의 마음을 위축시키는 걱정보다 따뜻한 격려의 말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젊은 세대는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해요. 타인의 삶을 한 조각만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지레짐작하며 걱정하기보다 먼저 들어주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중요해요.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상대가 원할 때만 하자고요.”

‘국민 아나운서’라는 호칭에 ‘국민 고민해결사’라는 수식어가 더해져야 할 것 같다. 인터뷰를 하다보니 어느덧 사연자 모드가 되어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엄마가 먹지도 못할 음식을 자꾸 보내세요. 어떻게 해야하죠?” 물으니 “엄마는 안 바뀌어요. 푸드뱅크나 친구들과 나눠보세요”라는 고민 해결법이 뚝딱 나온다.
36년 차 베테랑 아나운서인 그는 라디오 DJ로, 소통 전문 강연자로, 12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마이금희’ 운영자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소통 에세이 <공감에 관하여>에 이어 오는 17일 아이들의 사랑 가득한 말을 엮은 그림책 <모두 행복해지는 말>이 출간된다.
연결보다는 단절이, 만남보다는 고립이, 이해보다는 갈등이 더 많은 요즘 세상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어 “송해 선생님 평생 현역으로 활동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아나운서는 끝으로 자신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타인과 소통하는 힘은 내가 여유 있을 때 나온다”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다독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