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의 복수

2025-05-28

춘추전국 시절, 위(衛)나라의 손빈(孫賓)은 손자(孫子)의 5대손으로서 자질이 명민한 데다 할아버지의 『손자병법』을 이어받아 공부하면서 방연(龐涓)·장량(張良)과 함께 귀곡선생 밑에서 동문수학했다. 방연이 먼저 출세하자 손빈을 이끌어 함께 위왕을 섬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손빈이 방연을 압도하자 방연은 손빈이 제(齊)나라와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무릎뼈를 도려내어 앉은뱅이(臏)로 만들었다. 그의 이름이 손빈(孫臏)이 되었다. 방연은 그를 곁에 두고 앉은뱅이로 걷는 모습을 즐겼다.

손빈의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다. 돼지 똥을 먹고 미친 척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제나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제나라의 군사(軍師)가 되어 마릉(馬稜)에서 방연을 크게 깨트리고 사로잡아 목을 베었다. 복수를 마친 손빈은 방연의 떨어진 목을 잡고 슬피 울었다. 마냥 행복하고 기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허망함과 쓸쓸함만이 그의 몸과 마음을 덮쳤다.

젊어 한때 실수로 대중 앞에서 모욕과 인격 살인을 겪고 권좌에서 물러났을 때, 30대 젊은이의 원한이 얼마나 처절했을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절치부심했을 것이며 내가 저들을 죽이겠노라고 수많은 밤에 다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복수를 마쳤을 때 행복할까?

역사에는 통쾌한 복수란 없고 다만 회한만이 남더라. 영화 ‘네바다 스미스’에서 스티브 매퀸이 복수를 마무리할 무렵, 그는 내가 저 쓰레기 같은 인간들에게 복수하려고 내 청춘을 바쳤던가, 후회하며 총을 버리고 돌아선다.

말이 쉽지 용서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나의 사사로운 감정이 역사의 물결을 뒤틀리게 한다면 그는 그 순간에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인생에는 때로 긴 호흡이 필요하다. 남은 40년의 창창한 앞날에 사사로운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에 허물을 남겼다는 주홍글씨를 어찌 견디려나?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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