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영국 대학 등록금이 내년 8년 만에 처음으로 인상된다. 중국 등에서 오는 외국 유학생이 줄면서 재정난이 심각해진 데 따른 것이다.
브리짓 필립 영국 교육장관은 4일(현지시간) 하원에 출석해 "내년 9월 시작하는 새 학년도부터 대학 등록금이 9535 파운드(약 1700만원)로 인상된다"고 발표했다. 인상률은 3.08%이다.
영국 대학 등록금은 2012년에 이전의 3배인 9000 파운드로 오른 뒤 2017년 9250 파운드로 인상됐고 이후 동결됐다.
영국 대학들은 심각한 재정난을 호소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오랫동안 동결된 등록금과 수익성이 좋은 해외 대학원생의 감소로 많은 영국 대학들이 재정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대학계에서는 영국 대학들이 현재 학생 1명 당 평균 2500 파운드(약 447만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간 더타임스는 "연구 중심 대학인 러셀 그룹을 포함해 영국 대학의 약 40%가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라며 "요크 대학은 2400만 파운드, 카디프 대학은 3500만 파운드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3개 이상의 대학이 파산 직전이며 다른 대학과의 합병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50개가 넘는 대학은 올해 직원 감축을 발표했다.
영국이 강력한 이민 정책을 시행해 해외 유학생이 크게 줄어든 것도 대학 재정 위기를 유발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5월 독립기관인 이민자문위원회는 "정부가 교육 비자에 제한을 가한 이후 올해 9월 영국 대학에서 공부하기 위해 보증금을 내고 있는 해외 대학원생의 수가 전년 대비 63% 줄었다"고 밝혔다.
더타임스는 "지난 2021-22학년도의 경우 외국인 학생은 영국 대학 재학생의 24%를 차지했지만, 이들이 낸 수업료는 전체의 약 40%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영국 대학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영국인 학생에 비해 3배 이상의 등록금을 내고 있다. 의대의 경우 일부 대학은 6배를 받기도 한다.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대학들이 점더 더 외국인 유학생, 특히 훨씬 더 많은 수업료를 내는 중국 유학생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인상 이후에도 등록금이 계속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지난 6월 재정연구소(IFS)는 향후 5년 동안 등록금이 1만500 파운드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영국인 대학생이 받을 수 있는 생활비 대출 한도(1년 기준)는 400 파운드가 늘어 최대 1만227 파운드로 상향됐다.
영국인 학생들은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출받은 뒤 졸업 후 40년 동안 갚아나갈 수 있다. 연간 소득이 2만5000 파운드 이상일 때 소득의 9%씩 갚는 식이다. 40년 이후 미상환 금액은 탕감된다.
한편 노동당 정부는 이번 등록금 인상으로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지난 2020년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대학 등록금을 완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작년에 이 공약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했고, 이번에 등록금 인상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