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주항공 참사 1년…"LCC는 정비 인력 오히려 줄었다"

2025-12-28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발생 1년이 지났지만, 국내 항공 안전 현장은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승객과 승무원 안전과 직결하는 여객기 정비나 기체 자체 분야의 근본적인 변화는 제한적이고, 국내 항공 안전을 총괄하는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1년 넘게 공석이다.

28일 중앙일보가 제주항공 참사 이후 항공업계의 안전 분야 투자와 채용 현황을 전수조사했다. 그 결과, 주요 항공사들은 안전 교육과 내부 시스템 개선에는 비교적 적극적으로 투자했지만, 항공기 정비와 기체 교체 등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항공사는 정비 인력을 충원했지만, 구조적 변화를 이끌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항공사들은 일제히 ‘안전제일’을 외쳐지만, 어디에 돈을 썼는지는 차이가 뚜렷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대형 항공사는 정비·기체 중심으로 투자한 반면, 다수의 저비용항공사(LCC)는 2024년 대비 2025년 안전 투자액을 늘리면서도 상당 부분을 교육·훈련과 안전관리 시스템 개선에 배분했다. 정비·부품·기체 관련 투자는 소폭 늘었거나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항공의 항공기 1대당 항공정비사는 지난해 말 17.4명에서 이달 19.1명으로 늘었다. 아시아나도 16명에서 18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에어로케이 18.2→ 13.8명 ▶에어프레미아 16.7→ 14명 ▶이스타항공 13.9→ 12.5명 ▶티웨이항공 12.9→ 11.5명 등 LCC군에 있는 다수의 항공사에선 모두 감소했다. 지난해 사고가 발생했던 제주항공은 올해 두 차례 충원을 거쳐 정비사 수가 309명(행정·사무직 등 제외)에서 353명으로 증가했다.

김연명 한서대학교 항공산업공학과 교수는 “정비 인력과 기체 투자는 비용 부담이 크고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기 어렵다. 특히 일부 LCC는 정비고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도 있어 인력 충원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비 인력을 늘렸지만 관리 부실로 과징금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제주항공의 경우 정비사 인력은 지난해 말 대비 올해 40여명 늘었지만, 정작 현장에선 안전 수칙 미준수 사례가 잇따라 적발됐다. 제주항공 9월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4월 ‘비행 전후 점검(PR/PO)’을 48시간 이내에 수행하지 않았고, 항공기 엔진결함 발생에도 적절한 고장탐구 매뉴얼을 준수하지 않아 같은 결함이 반복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국토부는 총 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관련 정비사 3명에게는 각각 자격정지 30일(1명), 15일(2명) 처분을 내렸다.

제도적 공백도 여전하다. 상징적으로 한국공항공사의 사장 임명이 1년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김포·김해·제주 등 전국 14개 공항을 운영하며 공항 안전 관리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항공 안전 강화를 강조해 온 정부 기조와 달리,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공기관 수장이 장기간 부재하자 익명을 요청한 한 항공 전문가는 “비상식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항공업계에서는 “사고 이후 항공 안전을 강조하면서도 제도적 리더십 공백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모순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안전 문제는 현장 대응뿐 아니라 정책 결정과 관리 체계가 함께 작동해야 하는데, 컨트롤타워가 흔들리면 현장도 힘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토교통부는 추가 채용을 실시해 항공안전 감독관 수를 기존 40명에서 53명으로 늘렸다. 항공안전 감독관은 항공사의 정비·운항·교육·안전관리체계(SMS)를 상시·불시로 점검하는 핵심 인력이다. 사고 발생 시 원인 조사 뿐 아니라 평상시 항공사별 안전 관리 수준을 감독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번 증원이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중앙일보는 올해 1월, 국내 항공안전 감독관 1명이 감독하는 항공기 수가 항공 선진국의 7배에 달한다는 점을 단독 보도했다. 당시 국토부 산하 지방항공청에 배치된 감독관 30명이 국적 항공사 9곳의 항공기 411대를 관리·감독해 감독관 1명당 항공기 14대를 담당하는 구조였다. 미국과 프랑스는 감독관 1명이 항공기 2대 안팎을 관리하는 수준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감독 인력을 단계적으로 확충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항공기 대수와 운항 편수 증가 속도를 고려하면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직 항공안전 감독관은 “현실적으로 감독관 1명이 담당하는 항공기 수를 줄이지 않으면 점검의 밀도를 높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은 “국내 항공산업에 사모펀드 등 신규 자본이 유입되면서 안전을 비용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항공사들도 최소한의 법적 기준만 따르는 걸 넘어 충분한 수준으로 안전을 위해 투자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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