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라멘 말고 라면, 스시롤 대신 김밥

2025-09-12

넷플릭스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가운데 국내에서 유독 주목받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 ‘헌트릭스’가 먹는 라면과 김밥 등의 음식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이 음식에 시선이 쏠린 것은 바로 ‘발음’ 때문이었다. 원어 버전에서 헌트릭스는 영어를 사용하는데 이들을 ‘라면’과 ‘김밥’으로 발음한다. 통상 영어권 국가에서 라면을 ‘라멘(Ramen)’으로, 김밥을 ‘코리안 스시 롤(Korean sushi roll)’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영문 자막에서도 ‘Ramyeon’과 ‘Kimbap’이라고 표기한다.

이 같은 영문 표기와 발음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음식의 이름이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이 ‘김치’가 아닌 ‘기무치’를 식품 분야 국제표준인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 등록하려던 사례나 중국이 김치의 기원을 ‘파오차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우리 국민들이 분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밥을 코리안 스시 롤로 표현하는 것은 마치 김밥이 일본의 스시 롤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외국인들에게 낯설더라도 ‘팟타이’나 ‘똠양꿍’을 태국식 라멘이나 수프로 표기하지 않는 것처럼 김밥과 라면도 그 자체로 충분하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기업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한식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CJ제일제당의 비비고는 냉동 만두를 덤플링이 아닌 ‘만두(Mandu)’로, 고추장과 쌈장도 ‘GochuJang’ ‘SsamJang’으로 표기해 판매한다. 농심은 신라면 등을 ‘Ramyun’으로, 풀무원도 잡채를 ‘Japchae’로 표기해 해외 소비자들을 만난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여전히 떡볶이(Tteokbokki)는 ‘또뽀끼(Topokki)’, 막걸리(Makgeolli)는 ‘마꼬리(Makkori)’라는 일본식 발음으로 불리며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름은 단순한 단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름에 따라 소비자의 인식이 고정되고 종주국의 지위도 결정된다. 한식을 즐기는 외국인을 바라보며 그저 만족할 단계는 지났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도 제목에 ‘케이팝’이 포함된 덕분에 우리가 지금의 인기를 부담 없이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K푸드의 이름부터 제대로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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