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 쉬고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
(중략)
아무리 매운 추위 속에
한 해가 가고
또 올지라도
어린것들 잇몸에 돋아나는
고운 이빨을 보듯
새해는 그렇게 맞을 일이다.’
(김종길, ‘설날 아침에’)
2026년 병오년(丙午年)의 붉은 태양이 우리 치과계의 창을 두드립니다. 김종길 시인의 노래처럼 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오는 것이지만, 우리는 얼음장 밑에서 숨 쉬는 물고기와 봄날을 꿈꾸는 미나리 싹 같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새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 아침, 저는 시인이 노래한 희망의 싹과 함께, 갓 태어난 아기의 잇몸을 뚫고 나오는 하얀 ‘첫니’를 떠올립니다. 아기에게 첫니가 돋는 과정은 생애 첫 성장의 경이로움이지만, 동시에 잇몸이 붓고 열이 나는 ‘맹출의 고통’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그 통증을 견뎌내야만 비로소 세상의 양식을 씹고 소화하여 생명을 지탱하는 단단한 존재로 설 수 있습니다.
2026년, 우리 치과계가 마주한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새로운 희망의 치아가 돋아나려 하고 있지만, 이를 둘러싼 잇몸은 여전히 욱신거리는 산통을 겪고 있습니다.
치과의사 과잉 배출이라는 구조적 난제 속에, 만성적인 보조 인력난과 의료 질서를 교란하는 불법 덤핑 치과의 난립은 개원 환경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개원가의 손발을 묶는 인력 부족 문제와 저수가 덤핑 행위는 건강한 치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염증과도 같습니다. 이제는 곪은 곳을 도려내고, 행정 부담을 대폭 간소화하여 오직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 개원 환경’이라는 새 살을 틔워야 할 때입니다.
또한, 올해는 치과계의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제34대 협회장 선거가 있는 해입니다. 선거는 분열의 씨앗이 아니라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흑색선전 없는 ‘클린 선거’, 그리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화합하는 ‘성숙한 선거 문화’가 정착될 때, 우리 치과계는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아 강력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냉정히 말해 사회 전체로 볼 때 치과계의 정치적 역량은 타 직역에 비해 넉넉지 않습니다. 뭉쳐도 부족한 시점에 내부 분열은 결국 3만 회원과 국민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칠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내해야 할 성장통 너머에는 ‘진료 영역의 확장’이라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치과는 임플란트 중심의 진료를 넘어, 안면 미용(Facial Aesthetics)과 기능치의학으로 그 지평을 과감히 넓혀야 합니다. 치과의사가 구강을 넘어 안면 전체의 심미와 전신 건강의 균형을 다루는 전문가로 재정의 되는 원년이 되어야 합니다. 더불어 통합돌봄법의 성공적인 안착을 통해 지역사회 내에서 존경받는 치과의사의 위상을 공고히 다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확장은 기초치의학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과 신의료기술 개발이라는 뿌리가 튼튼할 때 가능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세’라는 옛말처럼, 탄탄한 기초 학문의 토대 위에 임상의 꽃은 더욱 화려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시대의 파도 또한 거셉니다. AI(인공지능)가 산업 전반을 뒤흔드는 지금,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AI 시대에 적합한 경영 시스템 도입과 디지털 업스트림(Up-stream) 테크닉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유행을 쫓는 것이 아니라, 진료의 정확도를 높이고 경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도구로서 AI를 능동적으로 활용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이 길은 치과의사 혼자가 아니라, 산·학·연의 긴밀한 상생과 공동 발전을 통해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그 중심 허브는 국립치의학연구원이 되어야 할 것이며, 이곳을 통해 치과 산업계에 대규모 외부 투자가 유입되는 소통의 장이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거세게 밀려오는 중국발 파도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치과계 가족 여러분.
시인의 시구처럼, 추위 속에서도 꿈을 꾸는 자세로, 그리고 따뜻한 국 한 그릇에 담긴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우리가 마주한 답답한 현실을 의연하게 이겨냅시다.
치과계 최고 정론지인 치의신보는 올해도 얼음장 밑에서 숨 쉬는 희망을 길어 올리는 두레박이 되겠습니다. 혼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나침반이 되어, 비판할 것은 날카롭게 비판하되 치과계의 비전과 희망을 노래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앞장서겠습니다.
2026년, 잇몸을 뚫고 힘차게 솟아오르는 하얀 첫니처럼, 낡은 것을 끊어내고 희망과 설렘이 가득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