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자뷔(deja vu). 처음 겪는 상황이나 처음 가는 장소에 대해 마치 이전에 경험했거나 와본 적이 있다고 느끼는 심리 현상이다.
올 가을 통신 시장에도 데자뷔가 나타나고 있다. 정권교체기 KT 최고경영자(CEO) 임기말이 되면 어김없이 대형 사고나 비리사건이 발생한다. 정치권에서 CEO 책임론과 사퇴요구가 이어진다. CEO와 집권당은 달라졌는데, 스토리는 어딘가 비슷하다.
남중수 전 KT 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취임했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석채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취임해 박근혜 정부 시절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사퇴했다. 황창규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돼 문재인 정부 초기 정치후원금 등 수사를 받다가 임기를 마쳤다. 구현모 전 대표이사(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취임 후, 윤석열 정부에서 연임을 시도했지만, 정치자금법 재판 등에 발목을 잡힌 끝에 후보 사퇴했다. 김영섭 현 대표는 어떤가. 윤석열 정부에서 취임 후 이번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 소액결제 해킹 사태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며 여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KT CEO를 둘러싼 잔혹사(?)는 2002년 회사 민영화 이후 23년째 이어지고 있다. CEO 임기말마다 터지는 대형 사건·사고의 무게감과 정권의 사퇴 압박 정도는 다를 수 있다. 그래도 전개되는 스토리라인은 판에 박힌 듯하다.
3~5년마다 폭발하는 CEO 리스크는 경영의 연속성을 해치고 기업의 중장기 전략 수립을 어렵게 한다. CEO별로 국민기업을 지향했다가 완전한 민간기업을 지향한다. 통신을 중심에 놓았다가, 탈통신, 인공지능(AI) 기업이 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 CEO마다 낙하산 임원 논란이 발생한다. CEO 리스크 시기가 오면 전임 CEO가 올려놓았던 주가는 폭락하는 것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AI 시대 경쟁 속도전 속에 유독 KT 인사·조직개편은 이듬해로 미뤄지고 사업계획을 짜는데 상반기를 다 보낸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KT 임직원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체념은 누적돼 간다는 점이다.
KT 지배구조 개선을 둘러싼 노력은 계속돼 왔다. KT는 한국ESG기준원(KCGS) 등 주요 지배구조 평가에서 A 등급을 획득했다. 보스턴컨설팅 등 유수의 컨설팅 기업이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그런데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KT 혼란의 원인은 다른데 있다는 사실을 통신 판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정치권이 KT를 100% 민영기업이라면서도 사실상 '전리품'으로 여기는 것이다.
차라리 솔직해지는건 어떨까. 오죽하면 차라리 KT를 다시 공기업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KT CEO, 이사 등 경영진 인사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보다, 차라리 정권 맡아 진행하는 게 책임성과 투명성 면에서 낫다는 것이다. 스페인 정부는 세계최대 통신사 중 하나인 텔리포니카 지분을 매입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도 인텔 지분을 매입해 운영하고 있다. 중국은 통신3사 전부가 아예 국영기업이다. 민간 중심의 시장에 공공기업 하나쯤은 진출해 시장과 기술을 정부가 원하는 공익적 방향으로 이끄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어 '오죽하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래도, 과연 이대로 KT를 놔둘 것인지, 근본 대책을 마련할 것인지 KT 구성원과 시장, 정부의 공론장이 열렸으면 한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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