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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촬영상 수상작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는 불타는 석유 기둥이 위로 치솟는 장면이 압권이다. 지하와 지상의 압력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이 현상은 초기 단계 석유 생산에는 꽤 요긴하다. 채굴량 증가로 압력 차이가 감소하면, 지하에 물이나 이산화탄소(CO2) 등을 주입해 석유의 이동성을 높이는 원유회수증진법(EOR)을 사용한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EOR 기술을 탄소 감축에 활용하는 방안이 주목받고 있다. 화력발전소, 산업 공정, 천연가스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CO2를 포집하여 EOR에 사용하면, CO2의 일부가 지층에 저장되는 ‘탄소 포집 및 저장’(CCS) 효과가 발생한다. 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 44개 CCS 프로젝트 중 82.4%가 EOR과 연계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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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옥시덴탈·엑손모빌·셰브런 등 주요 석유 기업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세금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EOR용 CCS에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IRA의 폐지나 축소를 공언하고 있지만, 석유·가스 증산 정책과 맞물린 EOR용 CCS에 대한 지원 축소는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그만큼 EOR-CCS 연계 사업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우리도 CCS에 대한 수요는 높다.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려면 CCS로 CO2 1000만t 이상을 매립해야 한다. 현재는 주로 해외 CCS와 연계하고 있는데, 충남 보령 블루수소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블루수소를 연간 12.5만t
생산하면서 발생한 CO2는 동티모르 바유운단 해저에 매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가 간 CO2교역 관련 법적 문제나 예상보다 비싼 저장료 등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결국, 우리 영토와 영해 내에서도 CCS를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내 대륙붕에서 CCS 적합지를 찾아보겠다고 2022년부터 한국석유공사가 ‘광개토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31년까지 CCS용 시추공 17개와 석유가스 탐사용 7개를 뚫는 원대한 계획인데, 이 중 하나가 ‘대왕고래 프로젝트’다. 1차 시추 결과, 아직 경제성 있는 천연가스 매장 여부를 단언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지난 6일 발표됐다. 이후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거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CCS 기술은 석유가스 개발 기술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정치적 논쟁과는 별도로, 시야를 넓혀야 한다. 탄소중립 달성에 필요한 국내 대륙붕 CCS 적합지 개발의 연장선에서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보면 어떨까. 결국 천연가스를 다 퍼내면 지금의 동해가스전처럼 CCS 시설로 전환하면 된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