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치과병원 설립, 방문진료, 수가 신설해야
정부 차원 치매환자 구강진료 인프라 구축 시급
대한민국의 치매 환자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금, 치매는 더 이상 일부 노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 전체를 흔드는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치매 환자를 위한 치과 진료 환경은 심각한 수준을 넘어 사실상 붕괴 상태다.
전국에는 2만 개 가까운 치과가 있지만, 치매환자를 실제로 진료할 수 있는 곳은 50개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단 한 곳도 없는 광역지자체도 있다. 치매환자는 거동이 어렵고 병원 방문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아 치매 진단 이후 구강건강은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스마일재단(이사장 이수구)은 지난 5월부터 스마일재단 ‘장애인진료치과네트워크’에 등록된 전국 약 400여개 치과 중 현재까지 200개 치과를 대상으로 치매환자 진료 가능 여부를 전수조사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충격적이다. 진료가 가능하다고 답한 곳은 단 20개뿐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홈페이지에 5월 8일 공식 출범한 ‘치매안심치과 네트워크’에 6월 23일 기준 등록된 치과는 총 21개소에 불과해 전국적으로 치매환자 진료가 가능한 치과는 약 50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치매환자는 장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진료 난이도가 훨씬 높음에도 별도의 제도적 지원이 없다. 이들은 행동 조절이 어렵고, 복합적인 전신질환을 앓고 있어 기본적인 치과 치료조차 고난도로 분류된다. 또한 고령과 기저질환으로 인한 높은 사망 위험 우려로 치과의사들이 진료 자체를 회피하게 된다.
그럼에도 치매 환자 진료에는 장애인에 적용되는 건강보험 수가 가산조차 없다. 치과의료진이 아무런 지원 없이 고난도 진료의 위험과 부담을 전적으로 떠안는 구조에서는 치매환자 진료 기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의료진의 사명감만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치매 환자의 구강관리는 단순히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생명과 직결된다. 씹고 삼키는 기능이 떨어지면 단백질 섭취가 줄고 근감소증, 영양실조로 이어지며, 이는 흡인성 폐렴, 욕창, 패혈증 등 생명을 위협하는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입으로 음식물을 제대로 씹지 못하는 순간부터, 치매 환자의 삶은 급속히 무너진다. 그때부터는 돌봄이 아닌 연명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치매 정책에서 ‘구강’이라는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 이후 4차례 치매종합관리계획을 수립했지만 그 어느 계획에도 구강건강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 역시 돌봄의 핵심인 구강관리 항목을 배제했다. 치매안심센터의 교육대상 직군 중 유일하게 치과의사는 빠져 있으며, 요양기관에 대한 치과 방문진료는 인력과 제도 부족으로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약 40년 전부터 방문치과진료를 제도화하여, 치매 초기 단계부터 구강기능 보존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해왔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치과의사에게 치매 조기 발견 역할을 부여하고, 지역 치매 케어팀의 필수 인력으로 포함시켰다.
2001년 Shimazaki 연구에 따르면 자연치아 20개 이상 보유한 노인은 10개 미만인 노인보다 치매 발생률이 1.5배 낮았다. 2019년 미국 과학저널 ‘Science Advances’에 실린 Dominy 연구에서는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치주염균(P. gingivalis)이 다량 검출되었고, 이 균이 뇌신경세포에 독성 단백질을 축적시킨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치매와 구강건강의 상관관계가 학술적으로 입증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무관심한 상태다. 이에 지난 5월 28일 서울시립 남부요양원에서는 ‘치매 및 장기요양 공공치과병원 설립 촉구 협약식’이 열렸다. 이날 협약에는 재단법인 돌봄과미래,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스마일재단, 한국노인복지중앙회, 한국치매가족협회 등 5개 단체가 참여해 치매환자 진료가 가능한 공공치과병원 설립을 촉구했다.

장애인보다 진료 난이도가 훨씬 높은 치매환자들이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 보호망에서 배제되는 현실은 부당하다. 치매 어르신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진료조차 받지 못하게 방치하는 국가는 결코 선진국이라 할 수 없다.
고령층의 삶의 질은 구강건강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이제라도 치매환자를 위한 구강진료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 공공치과병원 설립, 방문치과진료 허용, 치매환자 진료 수가 신설, 치과의료인 대상 치매전문 교육 확대와 함께 제5차 치매종합관리계획에는 반드시 ‘구강건강’ 지원 항목이 포함되어야 한다.
구강 돌봄이 무너지면 돌봄 전체가 무너진다. 치매환자에게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이미 돌봄에서 실패한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