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종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

2025-02-06

왜 토종 종자인가

IMF 시절 국내 굴지 종자 기업들

모조리 외국계 회사로 넘어가

우리 밥상을 집어삼키고 있어

다국적 기업의 대량 종자 살포

토종 종자 형질 다양성 파괴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 영향

기후위기에 사라져 가는 종자

식량안보에 국가적 명운 달려

토종 종자 발굴·보존 노력해야

우리의 밥상 위에 토종 종자로 키운 먹거리는 과연 얼마나 될까. 토종 종자란 ‘전북 토종 농작물 보존 육성 계획 수립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농업생태계에서 농민에 의하여 대대로 사양, 재배 또는 이용되고 선발되어 내려와 한국의 기후 풍토에 잘 적응된 식물의 씨앗으로 정의한다. 또 한 부류는 ‘토종 농산물’이란 산, 들 또는 강 등 자연 상태에서 생육하거나 자생하는 야생종과 한 지역에서 재배되어 다른 지역의 품종과 교배되지 아니하고 그 지역의 기후 및 풍토에 적응된 재래종을 의미하기도 한다.

간단한 사례를 살펴보자. 사람들은 식재료를 고를 때 보통 친환경이냐 유기농이냐를 먼저 확인하고, 국내산이냐 외국산이냐를 확인한다. 다이어트와 웰빙 열풍으로 한때 파프리카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 때가 있었다. 한마디로 파프리카 종자의 원산지는 네델란드로 100% 종자를 수입한다. 최근 파프리카 종자 1g에 6만원에서 12만원 정도로 한다니 금 한 돈(3.75g)으로 비교를 해본다면 현재 금 한 돈의 가격이 약 50만원 정도이므로 금 1g은 13만 3천원 정도이므로 파프리카 종자 1g이나 금 1g의 가격은 비슷하다.

우리가 매일 즐겨먹는 양파도 70-80%는 외국산 종자가 차지한다. 토마토 종자도 마찬가지다. 1g에 10만원 정도이므로 금 한 돈 가격과 비교해도 비슷한 가격이다. 물론 종자의 약 80%는 외국산으로 매년 막대한 로열티를 주고 들어오는 실정이다.

한때 국내 굴지의 종자 기업이 IMF를 맞아 모조리 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는 멕시코 종자회사 세미니스(현재 몬산토에 합병, 몬산토는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생화학 제조업체)로, 서울종묘는 노바티스(현 신젠타)로, 청원종묘는 일본 시카타에 인수되었다. 그 결과 수 많은 크고 작은 종묘회사가 외국으로 넘어갔으며 현재 우리나라 종자 시장의 50% 이상이 이 초강대국 종자회사가 우리의 밥상을 집어 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추 품종의 대명사로 알려진 청양고추는 우리의 땅에서 재배되고 유통되고 있지만 종자의 소유권이 몬산토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종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해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육지에서의 농산물 종자가 이런 정도인데 바다와 관련한 해산물은 어떤가. 김과 미역은 우리의 밥상에 거의 매일 올라오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김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20%는 일본 품종이다. 미역의 경우도 전남 완도가 최대의 미역 생산지지만 대부분의 미역 종묘는 일본산으로 막대한 로열티가 지불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 위기와 끊임없는 전쟁으로 사라져 가는 종자와 식량 위기는 식량 안보라는 거대한 국가적 명제에 다다르고 그 명제에 국가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우리의 토종 종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이유다. 앞서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중요 종자회사가 외국계 회사로 넘어간 이후 산업화된 거대 다국적 종자회사는 수확량과 수익성이 높은 상업용 작물 종자의 개발과 종자 사용후 연계되는 연관 산업, 말하자면 기계와 각종 농자재, 그리고 개발된 종자에 맞는 작물보호재의 사용 등, 연관 산업을 통한 이윤의 극대화가 다국적 종자회사가 추구하는 전략이다.

이러한 획일적이고 대량 생산 위주의 종자 살포와 공급망은 그동안 토종 종자가 가지고 있던 유전형질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생태계 전반에 막대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다국적 회사가 생산한 종자 이외에는 국산 토종 종자가 자국내의 환경에 오히려 적응을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글로벌 독점회사의 종자 공급 독과점 상황에서 식량 위기는 더욱 고조되고 있으며, 이는 기후 위기와 맞물리면서 생물종 다양성의 중요성은 더욱 더 높아지고 있다. 생물종 다양성과 국내 토종 종자의 보존을 위한 농업유전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국가적 현실이다.

민간 분야에서도 토종 종자를 지키고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전국씨앗도서관협의회, 토종씨드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 조직과 단체들은 토종 씨앗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주체(단체,개인)와 함께 하는 지역의 토종 씨앗 실태를 조사하고, 주민들과 함께하는 토종 씨앗 축제, 토종 씨앗을 이용한 농사를 지으며 토종 씨앗의 보존과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토종 매실 종자를 가지고 전국적으로 보급 운동을 벌인 권병탁 전 영남대학교 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권병탁 교수는 1980년 전남 송광사 경내에 있던 고매(古梅, 당시 수령 약 520년)의 씨앗을 주워 싹을 틔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 나무는 원래 법당 앞에 있었는데 사찰 증축 관계로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현재 고사함). 고매는 당시 이 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던 씨알을 주워 집 앞 텃밭에서 싹틔워 수확한데서 유래했다.

요즘은 모두 접목을 통한 개량 매실이지만 당시 권병탁 교수는 원 종자를 채취하여 그대로 파종하여 이듬해에 싹이 터서 잘 자랐는데, 그 후 6년이 지나 열매가 충실하게 열려 많은 수확을 하게 된 것이다. 그때 권 교수는 매실의 수확 시기에 따라 약효 성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최적기에 수확을 한다면 수확량은 줄어드나 매실의 무게는 3배, 구연산 효과는 식물의 호흡 기작인 크렙스 회로(tricarboxylic acid cycle)에서 증명한 대로 14배에 이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권 교수는 30여 년 동안 토종 송광매실의 보급에 앞장서 왔는데 특히 매실나무 묘목 15만 주를 매년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으며 팔공산 자락에 송광매기념관을 건립하여 매실의 효능과 재배법을 알리는데 주력해 왔다.

그 후 칠곡의 낙동강변에 서명선씨는 권병탁 교수 씨매실 묘목과 그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송광매원’을 설립하여 토종 매실을 활용한 각종 가공품을 만들어 연 매출 30억원을 올리는 농업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당시 권병탁 교수의 이러한 노력으로 송광매실은 토종 매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현재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전국 특히 순천지방에서는 특산물로 인정받아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다.

한 사람이 사명감을 가지고 이루어 놓은 결과와 교훈은 지대하다. 순종(純種)의 야생 씨매실을 보존하기 위해 자가수분만을 고집하며 토종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불굴의 노력을 해온 권병탁 교수의 토종 종자보급을 위한 국민운동은 현재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전 세계의 종자 전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도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농업과학원의 씨앗은행(https://genebank.rda.go.kr)을 1987년도에 설립하여(당시 종자은행) 농업유전자원을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종자의 국내외 수집을 통해 증식과 품질 검증을 거쳐 국가가 등록을 하고 극단의 기후 변화로 인한 국가적 재난에 대비해서 종자를 중복관리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씨앗은행과 산림청의 시드볼트, 그리고 노르웨이의 국제종자저장고(Svalbard Global Seed Vault)가 그것이다.

시드볼트는 현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내에 있으며 주로 야생식물 종자를 저장한다. 그리고 스발바르제도 스피츠베르겐섬의 국제종자저장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종자저장 시설로 450만점 이상 보존이 가능하며 현재 200만점 정도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시드볼트와 달리 주로 작물 종자를 저장한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 재해, 전쟁 및 핵폭발과 같은 지구 대재앙 등으로부터 주요 식물의 멸종을 막고 유전자원(genetic resource )을 보전하기 위해 조성한 종자 보전 시설이다.

생물다양성의 유지와 기후 변화 대응력의 제고, 그리고 지역농업의 자립과 토종 종자로서의 고유한 맛과 영양 가치의 보존, 전통 농업과 문화 보전 및 환경 친화적 농업을 위해서는 토종 종자의 발굴과 보존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일은 미래 세대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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