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챗GPT 등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이용해 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를 작성하는 교사들이 늘어나면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 업체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가 학생을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는 생기부 작성 업무까지 사설 업체로 외주화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수원시의 한 사립 중학교는 지난 6월 ‘생기부 AI 작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A 업체 대표를 교사 연수 강사로 초청했다. 업체 대표가 직접 교사들에게 50분 동안 생기부 작성 시 자사 AI 서비스를 활용하는 방법을 시연했다. A 업체는 과목별 세부능력과 특기사항(세특) 등 생기부 초안 작성을 대신하는 AI 서비스를 올해 출시했다. 교사가 서류 업무에 들이는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취지로 홍보하며 자동 작성 기능을 내세웠다.
AI 활용이 전방위로 확대되면서 일부 교사들도 생기부 작성에 챗 GPT 등을 활용하는 분위기는 확산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달 교사들이 생기부 작성에 생성형 AI를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 시도교육청에 보냈다고 밝혔다.
이에 사설 업체들은 ‘교사가 따로 다듬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정확성’ 등을 강점으로 앞세워 각종 유료 서비스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B 업체는 “서울대 생기부 3000만자를 학습한 생기부 전문 AI 모델을 탑재했다”고 홍보했다. 서울대 합격생 500여명의 생기부를 수집해 AI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해당 업체는 교사가 수업일지를 올리면 학생별 세부능력과 특기사항이 자동으로 작성되는 것을 선보이며 “매 학기 말 똑같은 생기부 내용을 쓰는 일은 선생님이 하실 필요가 없다. 선생님은 최종 검토만 하면 된다”고 안내했다.
교사를 겨냥한 생기부 작성 AI는 월 이용 금액이 2만~3만원 선에 형성돼있다. A 업체는 월 2만원에 생기부 기록 초안 작성과 수업 자료 생성 등 AI 서비스를, B 업체는 월 2만9900원에 AI 작업 200번을 제공한다.
일부 학교는 학교 차원에서 생기부 AI 분석 프로그램을 구입해 사용하거나 교사 대상 연수를 진행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학생 개별 맞춤형 진로·진학 상담의 질을 향상하고 교사 업무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서”라며 생기부 분석 프로그램을 약 200만원에 구입했다.
AI의 확산을 막기는 어렵더라도,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내용까지 AI 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효율성은 높아지겠지만 생기부 도입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기도의 9년차 국어교사는 “학생 개개인에게 딱 맞는 제각각의 표현을 사용하려면 교사가 시간을 들여 고민해야 하는데 모든 업무를 업체에 맡기는 방식이 맞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사설 업체들이 공적 문서인 생기부의 데이터를 서비스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등에 우려가 제기된다. 서비스의 데이터 수집 및 활용 범위를 일반 이용자가 알기는 쉽지 않다. 생기부 원본 파일은 삭제하더라도 데이터는 AI 학습에 활용하는 곳도 있다. C 업체는 홈페이지에 “분석에 필요한 데이터만 저장하고 원본 파일은 즉시 삭제한다. 저장된 데이터는 탈퇴 시 파기한다”면서도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생기부 데이터는 내부 AI 엔진 정교화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했다.
교육부는 올해부터 생기부 작성 및 관리 지침을 개정해 생기부의 상업적 활용이나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 훈령이기 때문에 교사 등 공무원을 대상으로 할 뿐 사설 업체가 직접 수집한 생기부를 데이터화 하거나 활용하는 것을 제재할 방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