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직원의 ‘민간인 미행·촬영, 경찰 접대’···경찰 “사실이지만 범죄 아니다”

2024-10-22

민간인을 미행·촬영하고 경찰에게 선물·향응을 제공한 국가정보원 직원 이모씨에 대해 경찰이 사실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법 위반은 없었다”며 모든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경찰의 수사결과 통지서를 보면,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국정원 직원 이씨와 검찰·경찰·국정원 관계자 등의 국정원법·청탁금지법 위반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모두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사건은 지난 3월22일 이씨가 민간인인 주지은씨(45)를 몰래 미행하고 촬영하다 들키면서 불거졌다. 주씨가 현장에서 이씨로부터 확보한 이씨의 휴대전화에는 주씨의 집과 주씨가 평상시 운동을 하거나 남편·지인과 만나는 모습 등을 찍을 사진들이 담겨있었다. 주씨의 딸이 다니는 학원 정보까지 기록돼 있었다. 또 촛불행동의 김민웅 대표를 비롯해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에 대한 미행 기록도 적혀 있었다. 주씨와 촛불행동 측은 지난 4월1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수사결과 통지서에서 이씨가 했던 행위들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다. 먼저 주씨를 비롯해 김 대표와 대진연 소속 대학생들에 대한 미행·촬영 등을 통한 인적사항·동향 파악 행위가 있었다고 했다. 경찰은 “정보수집 활동 대상이 아니었는데, 주씨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면서 함께 있던 대진연 대표와 회원들이 촬영된 것”이라는 이씨의 진술을 그대로 인용했다.

경찰은 이씨가 경찰청과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에게 선물과 향응을 제공한 사실도 인정했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소속 A씨는 지난해 10월21일과 지난 2월5일 두 차례에 걸쳐 한우 선물세트를 받았고, 지난해 11월24일엔 저녁 식사와 향응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소속 B씨와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소속 C씨는 지난 2월5일 한우 선물세트를, 경기남부경찰청 안보수사과 소속 D씨도 지난해 11월24일 저녁식사와 노래방 등 향응을 받았다.

하지만 경찰은 모든 혐의에 대해 “혐의가 없다”고 밝혔다.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정보수집활동은 국정원 내부 위원회의 심사·의결을 거쳐 승인을 얻은 다음 착수한 것으로서 고발인들에 대한 미행·촬영 행위의 심사·착수·실행에 있어 절차적 하자는 없다”고 했다. 경찰은 “국정원이 김 대표를 북한의 대남공작기관과 연계한 것으로 의심하게 된 근거가 확인된다”고도 했다. 미행·촬영 행위를 할 만한 명분이 있었다는 취지다. 다만 경찰은 국정원이 이들에게서 북한과의 연계를 의심했다는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선물·향응을 받은 경찰관들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청탁금지법상 제공 가능한 범위인 ‘1회 100만원, 회계연도에 300만원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해당 경찰관들이 합동수사단에서 이씨 등 국정원 직원들과 함께 일한 경력이 있다는 점도 불송치 근거로 댔다. 경찰은 “이들이 형·동생 하는 사이가 됐고 (합수단) 파견 이후에도 선물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경찰은 국정원이 지난 3월22일 주씨를 “북한 문화교류국과 연계한 안보침해 범죄행위 혐의가 있는 자”로 규정하고 “주씨 측이 이씨를 불법 감금하고 휴대전화를 탈취했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주씨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서도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봤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영상과 진술을 통해 실제 (주씨 측이) 이씨를 끌고 가는 모습이 확인됐고, 국정원의 입장 공지는 주씨 측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라며 범죄 의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씨 측이 이씨의 행위 뒤에 검찰·경찰이 있다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해서도 경찰은 “증거가 없다”고 했다.

경찰의 결정과 관련해 주씨와 촛불행동 측은 23일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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