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정자에 서가를 만들자 바람과 햇살이 애독자가 되었다.
바람과 햇살은 마음이 후해서 이끼 낀 숲길을 책값으로 건넸다.
저기 저 산안개와 동고비 노래와 탁족의 아침까지 덤으로 받았다.
횡재했군!
<감상> 지난여름은 몹시 더웠습니다. 수성구 범물동 숲길과 계곡 덕분에 여름나기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탁족의 맨발에 입 맞추는 송사리 떼와의 아침 한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덕분에 “고요의 남쪽 저 건너가 궁금한 물소리가 물소리로 잦아든 흔적을 더듬어 맨발을 불러내는 송사리 떼, 탁족의 그 아침에 닿으려면”과 같은 구절을 얻기도 했고요. 많이 얻었으니 많이 갚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가진 것이 책 밖에 없는 사정이어서 고작 대덕지 정자에 조그만 서가를 만드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200여권의 시집을 꽂아 둔 조그만 책꽂이입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고, 관리 또한 이용자의 몫입니다. 분실을 우려하지는 않습니다.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말도 있으니 탐나는 시집이 있으면 가져가도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문화 사랑방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유일한 기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