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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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문광호 기자의 밑줄__ | 이청준 <별을 보여드립니다>
조해람 기자의 밑줄__ | 이슬기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유설희 기자의 밑줄__ |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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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면 기자들이 '밑줄' 그은 책은?
안녕하세요. 점선면팀입니다. 오늘(28일) 레터는 조금 특별한 형식으로 독자님께 인사드립니다. 바로 '밑줄 특집'인데요. 점선면을 제작하는 3명의 기자들이 각자 감명 깊게 읽은 책에서 독자님과 함께 나누고 싶은 문장을 추려보았어요. 한달에 한번쯤은 무겁고 때로는 골치도 아픈 시사 현안이 아닌, 독자님이 읽기에 조금은 부담이 덜하고 편안한 글을 보내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기획해보았는데요. 앞으로는 매달 말에 밑줄 특집을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밑줄 특집, 시작하겠습니다!

"환송회라고 몇 친구가 마련한 전날 밤 술자리에서 그는 거푸 잔을 비워내면서 눌렀던 감정을 차분차분 쏟아냈다.
"너희들은 언젠가 내가 더 큰 불행과 맞붙어 싸우기를 기다려왔어. 마치 내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불운이 예비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눈들이지. 나는 결국 그것과 싸워 다시 남아날 것이라고. 왜 그렇게 생각하나, 나를······."
"바라건대 너희들에게 불행이 있기를 빌겠다. 너희들에게도 사람이 그리워질 때가 있었으면 하기 때문에······.""
- 이청준 <별을 보여드립니다> 중에서

<별을 보여드립니다>는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1960년대 '나'의 시점에서 '그'를 보여주는데요. 그는 영국에서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한곳에 마음 두지 못하고 거품처럼 부유합니다. 그는 자신이 힘들 때 친구들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거리낌 없이 거짓말과, 허락 없이 물건 가져오기(라고 쓰고 '절도'라고 읽었습니다)를 일삼습니다.
그가 유일하게 진심인 순간은 오로지 별을 대할 때뿐인데요. "별을 볼 줄 모르는 놈들에게 함부로 별을 보이는" 일에 분노할 만큼 별 보는 일을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친구들에겐 망원경을 쓰는 걸 허락하지 않을 정도죠. "사람을 사랑해 본 일이 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느냐"라고 하는 데서 일종의 소신도 엿보입니다.
그와 비교하면 저는 그다지 낭만을 좇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디카(디지털카메라), 녹슨 기타, 끝까지 가본 적 없는 옛길. 이런저런 시도는 해봤지만요. 그래서일까요? 낭만을 좇는 사람을 볼 땐 언제나 마음을 쓰게 됩니다. 기어코 해낸 사람도, 좌절하고 다른 길을 찾은 사람도 너무 눈부시니까요.
어제(27일) 새벽 누리호가 발사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발사 예정시간 이후로 알람을 맞췄는데요. 고백하자면 제겐 결과만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발사가 18분 늦춰졌고, 저는 생중계로 이륙을 지켜봤습니다. 섬광이 번쩍이는 순간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의 감격에 겨운 목소리가 환하게 들렸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실패해도 괜찮겠다고요. 이런 과학자가 있다면 우리는 언제고 다시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을 거라고요.
<별을 보여드립니다>는 불행한 이를 보여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거짓말과 도둑질에도 그를 믿어줍니다. 때문에 "불행이 있기를 빌겠다"며 친구들을 저주하는 그가 유일하게 자신이 아껴 마지않는 "미친놈들이나 좋아하는 별을" 보여주는 사람이 '나'일 테고요. 그리고 '나'는 소설을 통해 그 '불행한 이'를 독자들께 보여드립니다. 그건, 어쩌면 그가 간절히 바랐을 응원이자 지지일 겁니다. 제가 낭만을 품은 이에게 가진 마음처럼요.
점선면도 그랬으면 합니다. 그래서 지금 방황하여 강물에 가라앉은 듯 작은 물결에도 오소소 흔들릴 독자님들께, 별을 보여드립니다.
문광호 기자

2023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82세 아마추어 천문학자 조 델파우스가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델피우스에 따르면 망원경을 세운 길 한복판이 토성을 관측하기 가장 좋은 위치였습니다. 다프네 줄리엣 엘리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우린 결국, '간절한 사람들'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누구보다 삶의 간절함을 느끼는 사람들. 살고 싶고, 바꾸고 싶고, 더는 이런 세상에서 침묵을 지키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요."
- 이슬기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 중에서
개성 만점 깃발들이 탄핵 광장을 수놓았던 작년 겨울. 어찌 보면 역설적(?)인 주목을 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내향인'이라고 적힌 깃발을 든 기수였습니다. 깃발을 본 집회 참가자들의 관심이 쏟아지면 어느덧 행렬 저 멀리 사라져버리던 그의 정체는 94년생 그래픽디자이너 A씨입니다. MBTI 검사를 하면 'I 성향(내향성)'이 93%나 나온다는 그는 어쩌다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섰을까요?
프리랜서 언론인 이슬기 기자가 탄핵 광장에 나온 청년 여성들을 인터뷰해 쓴 책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에서, A씨는 "내향인들도 화가 나면 집에만 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깃발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여성인 그에게는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내향적인 여성들은 사회에서 '순종적인 사람' 또는 '분노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기를 강요받아왔잖아요. 거기에 반하는 깃발로 그걸 깨부수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A씨는 자신과 같은 또래 여성들이 겪는 폭력을 예민하게 느껴 왔습니다. 여성들은 특정한 역할과 성향을 늘 강요했고, 젠더폭력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A씨는 "여자로 살아남은 것 자체가 '운이 좋았던 것'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며 "하지만 운이 아니라 권리로 살아야 하지 않나"라고 했습니다. 광장은 그런 절실한 마음들이 모인 공간이었습니다. "그저 살고 싶어서, 존엄하게 존재하고 싶어서" 나온 여성들이 있었기에 "분노와 슬픔이 연대가 되고, 그 연대가 기쁨과 용기로 바뀐 순간들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A씨가 꿈꾸는 사회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누구나 자기 자신을 표현해도 안전한 사회, 차별과 혐오 없이 공존할 수 있는 사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광장에서 깃발을 흔들면서도 A씨는 '광장 이후'를 봤습니다. 그는 "탄핵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며 "광장에서 외쳤던 목소리와 의제들이 일상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연대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제 깃발을 들고 다시 나타날 준비가 돼 있다"고 했습니다.
12·3 불법계엄 사태도 어느덧 1년이 돼 갑니다. 야만적인 폭력성을 만천하에 드러낸 윤석열 전 대통령 일당을 끌어내리면서, 광장에 모인 이들은 A씨처럼 '더 나은 세상'을 꿈꿨습니다. 더 평등하고 덜 잔인한 세상을요.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 그런 세상이 오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기울어진 불평등이 짓누르는 무게에 가장 낮은 기둥부터 바스러지고, 차별과 혐오의 언어는 여전히 공기를 떠돕니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이란 절대 편한 길로 올 리 없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계엄이 지나간 1년을 맞아 독자님께도 여쭙고 싶습니다. 독자님이 꿈꾸던 좋은 세상은 무엇이었나요? 그 세상은 어디쯤 왔나요?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떤 걸음을 걸어야 할까요?
조해람 기자
"유럽의 보수주의자들은 1930년대 당시 프랑스 혁명에서 내세웠던 주요 독트린을 거부했고, 자유보다는 권위를, 평등보다는 계급을, 우애보다는 복종을 선호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자유주의자들과 새롭게 부상한 좌파에 대항한 싸움에서 파시스트들을 쓸모있는 존재라고, 심지어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라고 생각했다. (중략)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반파시즘적 태도를 끝까지 고수했다. 하지만 대다수 보수주의자들은 공산주의가 파시즘보다 더 나쁘다고 확신했다. 그들은 좌파의 승리를 저지할 수 있다면 파시스트들과 협력할 뜻이 충분했다."
- 로버트 팩스턴 <파시즘> 중에서
곧 있으면 12·3 불법계엄 1년입니다. 저는 요즘 계엄 1년을 앞두고, 6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완독에 실패했던 로버트 팩스턴의 <파시즘>이라는 책을 다시 꺼내서 읽고 있습니다. 팩스턴은 40년 가까이 파시즘을 연구해온 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데요. 계엄 이후 '한국민주주의 위기와 극우 파시즘'에 대해 짚은 책 <광장 이후>를 쓴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님이 이 책을 추천해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신 교수님은 <광장 이후>에서 "12·3 탄핵 정국에서 종국에는 파시즘의 경향이 나타나기에 이르렀다"며 한국사회에 파시즘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는데요.
팩스턴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 독일의 히틀러 정권 등 여러 파시즘 운동의 양상 중에서 9가지의 공통점을 추려냅니다.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이건 모든 적에 대해 법률적·도덕적으로 한계가 없이 어떤 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 "필요할 경우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 공동체를 더 깨끗하게 더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 "(예외 없이 남성인) 타고난 지도자의 권위의 요청. 공동체의 운명을 단독으로 구현할 국가 지도자에 대한 갈망" 등의 대목을 읽으면서 한국사회도 파시즘이 태동할 수 있는 일정한 조건이 갖춰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계엄을 선포한 국가지도자 윤석열의 등장. '북한 공산세력' '종북 반국가세력' 등 적을 척결하기 위해서는 계엄도 허용될 수 있다는 탄핵 반대자들의 믿음. 그리고 적을 척결하기 위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판사사냥'에 나서고, 중국인 추방 시위를 벌이는 등 배제적 폭력을 동원한 사람들까지. '좌파를 막기 위해서는 악마와도 손을 잡겠다'는 사고방식이 결국 파시즘을 초래했다는 팩스턴의 진단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도 진지하게 음미할 만한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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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27일) 레터에서는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당당한 우주로켓 발사국이 된 한국 앞에 놓인 새로운 고민거리, 우주쓰레기 문제를 다뤄봤습니다. 오늘 레터는 점선면 뉴스레터를 만드는 기자 3명이 인상깊게 읽은 책 구절을 소개하는 '밑줄 특집'을 전해드렸습니다. 독자님의 '한 줄'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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