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켓 클럽에서 왜 PGA 투어 골프대회를 할까

2025-05-07

PGA 투어 시그니처 대회 트루이스트 챔피언십은 9일(한국시간) 필라델피아 크리켓 클럽의 위사히콘 코스에서 열린다. 이름은 크리켓 클럽이지만 이 클럽엔 크리켓 구장은 없다. 대신 골프 코스가 3개나 되는 명문 골프 클럽이다. 크리켓 클럽의 세 골프 코스는 각각 19, 20, 21세기에 지어졌다. 3세기에 걸쳐 건설된 골프 코스가 있는 클럽은 이 클럽이 유일하다.

아직도 크리켓 클럽이라는 이름을 쓰는 이유는 전통 때문이다. 1854년 결성된 이 클럽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포츠 클럽으로 꼽힌다. 골프나 크리켓 클럽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게 아니라 미국의 모든 스포츠 클럽을 통틀어 가장 전통이 깊다.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유학 온 영국 학생들이 졸업 후 이 지역에 남아 고국에서 즐기던 크리켓을 하기 위해 클럽을 만들었다. 이후 골프 인기가 늘면서 19세기 말 사실상 골프 클럽이 됐다.

이 클럽이 유명한 건 드라마틱하게 산 설계자 때문이기도 하다. A.W. 틸링허스트(1874-1942)는 미국 골프장 건설의 황금기에 활동한 설계자다. US오픈에 출전할 만큼 골프 실력도 뛰어났고 1890년대에 스코틀랜드로 골프 여행을 가서 톰 모리스에게 코스 디자인도 배웠다.

그는 부자집 딸과 결혼했고 술과 파티를 즐긴 난봉꾼이었다. 리무진을 타고 출근했으며 여행을 하면 가장 비싼 호텔에 묵었다. 골프 코스 디자이너 외에도 뛰어난 사진작가이자 시인, 소설가였다. 이런 천재들의 일부가 그렇듯 정신적으로 불안했다. 과대망상과 격렬한 감정 기복 등의 행동으로 볼 때 그는 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보인다.

틸링허스트는 메이저대회를 여러 번 개최한 발투스롤, 윙드풋, 베스페이지 블랙 코스를 디자인했다. 샌프란시스코 클럽도 그가 리노베이션했다.

그러나 그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크리켓 클럽 위사히콘 코스를 가장 사랑했다. 틸링허스트는 캘리포니아 등 다른 지역으로 이사해서도 평생 크리켓 클럽의 회원으로 남았고, 위사히콘 개울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유언을 했다.

크리켓 클럽의 위사히콘 코스는 2026년 PGA 챔피언십을 여는 아로니밍크, 2030년 US오픈이 열리는 메리언과 더불어 필라델피아의 3대 클래식 코스로 꼽힌다. 땅의 흐름을 살리고 벙커를 전략적으로 배치했으며 그린이 빠르다.

2014년 리노베이션을 했지만 대도시 주위라 한계가 있다. 주차장과 갤러리 수용 시설 등이 부족해 메이저 대회를 열기는 어려워 보인다. 파70에 7119야드로 올해 열린 PGA 투어 대회 코스 중 세번째로 짧다. 벙커는 118개로 가장 많다. 그러나 로리 매킬로이는 “맞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페어웨이 벙커를 다 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필라델피아=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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