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직매입 납품가 점점 낮추고
성장장려금·물류비는 매년 올려
불편 감수하고 탈퇴하는 소비자들
“누군가 희생으로 내가 편했던 것”
전문가 “플랫폼 독과점 규제를”

쿠팡에 라면과 즉석밥, 휴지 등 생활용품을 공급하는 A업체는 이번주 다른 e커머스가 주최하는 연말 할인행사에 참여하려다 하루 만에 중단했다. 평소 할인가의 15~20%를 추가 할인하는 온라인 최저가 행사로, 할인 금액을 e커머스에서 부담해 별도 비용 없이도 매출을 올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쿠팡 영업 담당자의 전화 한 통으로 행사 참여를 중단하기로 했다. 쿠팡의 최저가 정책에 따라 같은 제품이 다른 e커머스에서 더 저렴하게 판매돼 가격을 낮춰야 할 때 쿠팡의 줄어든 이익을 업체가 메워야 한다는 계약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이번 행사 참여를 중지한 판매업체들이 잇따르면서 10여개 제품이 할인 대상에서 빠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쿠팡은 업체들과 계약할 때 최소 마진을 정해놓고 계약하고 여기에 못 미치면 어떤 식으로든 벌충하게 한다”며 “쿠팡은 오픈마켓의 실시간 가격 변동을 활용해 최저가 전략을 펴면서 손실은 업체에 전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시장 경쟁을 해치는 행위로, 소비자는 제품을 더욱 저렴하게 구매할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쿠팡의 독점적 지위가 공고해질수록 가격 결정권 남용과 같은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소비자는 최저가에, 판매자는 매출에 묶이다
“판매자들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
소비자들은 쿠팡의 최대 장점으로 ‘최저가’를 꼽는다. 직장인 김모씨(47)는 매일 쿠팡 애플리케이션(앱)에 5~6번 접속한다. 시작은 아침마다 라디오 앱을 켤 때 뜨는 쿠팡 광고를 통해서다. X를 눌러도 광고는 쿠팡 앱으로 연결되고,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한참 동안 이런저런 상품들을 둘러본다. 공산품 가격을 비교할 때도 쿠팡에서 검색한다. 김씨는 “쿠팡이 모든 검색의 기준”이라며 “신용카드도 쿠팡 할인카드로 사용 중”이라고 말했다.
‘쿠팡 중독자’라고 밝힌 구모씨(39)는 올해 초 쿠팡을 탈퇴했다가 금세 가입했다. 구씨는 “인생도 재미없게 느껴지고 우울하고 답답할 정도로 금단증상도 느꼈다”며 “쿠팡 없는 세상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탈퇴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쿠팡이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은 직매입(로켓배송)과 판매자로켓, 오픈마켓(3자 물류) 등 세 가지다. 직매입과 판매자로켓 모두 쿠팡 물류센터에서 보관·검수·배송이 이뤄지는데, 가격 결정을 쿠팡이 하는지 판매자가 하는지가 다르다. 최저가는 주로 직매입 제품으로, 전체 상품 구성이나 매출에서 직매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는다.
쿠팡에 따르면, 쿠팡과 거래 중인 소상공인 파트너는 2023년 기준으로 약 23만명에 이른다. 이들의 연간 거래 금액은 약 12조원. 전국 소상공인 매출이 7.4% 성장하는 동안 쿠팡 소상공인 파트너는 20% 성장률을 기록했다.
소상공인들은 “속사정은 다르다”고 말한다. 쿠팡에 세제를 직매입으로 공급해온 지모씨(49)는 요즘은 오픈마켓으로만 판매를 하고 있다. 지씨는 “6년 전 처음 거래했을 때 납품가가 정가의 75%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60%로 낮춰달라고 하더라”며 “광고비와 프로모션까지 15% 수준으로 하라고 하니, 매출은 좋아도 남는 게 없었다”고 전했다. 식재료를 납품 중인 정모씨(38)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공급가를 제안하는데 협의가 아니고 반강제”라며 “따르지 않으면 발주를 안 한다. 그 가격은 맞출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든 맞추라고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여기에 매년 성장장려금이 0.2~0.3% 오르고, 밀크런(물류비)도 0.5~1% 오른다”며 “매출이 늘어도 즐겁지 않았지만 요즘은 마이너스 매출”이라고 말했다. 판매장려금이라고도 불리는 성장장려금은 납품업체가 상품 판매 촉진 명목으로 쿠팡에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씨는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찾아오고 괴롭힌다”며 “쿠팡과는 다들 거래를 안 하고 싶어하는데 매출이 워낙 크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납품하는 거다. 적자였던 쿠팡이 흑자가 났을 때도 다 납품업체 쥐어짠 결과라고들 했다”고 말했다.
주문도 반품도 빠르지만, 정산은 더디다
“쿠팡, 왕복 택배비도 수수료 떼”
원터치로 결제하는 등 쉽게 주문할 수 있는 데다 자유롭게 반품할 수 있는 점도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쿠팡의 장점이다. 이모씨(35)는 와우(유료 멤버십) 회원이라 쿠팡에서 배송과 반품을 모두 무료로 할 수 있다. 30일 이내면 조건 없는 환불도 가능하다. 이씨는 “가끔 옷을 주문할 때는 입어보고 결정하려고 다양한 사이즈와 디자인을 시킨다”며 “5벌 주문했다가 모두 반품한 적도 있다. 환불 처리도 즉시 되더라”고 말했다.
쿠팡의 반품 정책에 소상공인들은 한숨부터 쉰다. 반품 과정은 철저히 업체 책임으로 진행된다. 판매자로켓으로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유모씨(40)는 “제품에서 술집 냄새가 나는데도 전액 환불해줬다”며 “고객 책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업체가 고객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증빙해야 하는 등 복잡해 자체 손실로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오픈마켓으로 패션잡화를 판매 중인 고모씨(54)는 “택배사 사정으로 도착을 못한 경우 다른 e커머스들은 업체 귀책이 아닌데, 쿠팡은 상품 배송 중 환불 요청도 업체가 왕복 택배비를 내야 한다”며 “쿠팡은 왕복 택배비 6000원에서도 수수료를 떼간다”고 말했다. 고씨는 “판매자 시스템에 불만을 표출해도 쿠팡에선 기계적인 답만 한다. ‘좋은 택배사’를 쓰라는 거였다”고 말했다.
배송과 반품은 빠르게 이뤄지지만, 쿠팡의 판매대금 정산은 그렇지 않다. 고씨는 “네이버는 주문 다음다음날이고 G마켓은 길어도 2주면 정산이 끝나는데, 쿠팡은 한 달 지나고 15~20일은 돼야 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정산 주기가 길면 자금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영세업체일수록 정산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을 때 타격이 크다. 고씨는 “빨리 주면 어떤 제품이 나가서 들어온 돈인지 알 수 있는데 그것도 아니고, 금액도 나눠서 들어오니 언젠가부터는 ‘알아서 주겠지’ 한다”고 토로했다. 쿠팡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산 주기와 관련한 지적을 받고 “개선하겠다”고 밝혔으나,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개선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납품업체들은 쿠팡의 상품 노출 방식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들 했다. 유씨는 “‘아이템 위너’라고 여러 업체가 판매하는 같은 제품 중 가격이 가장 저렴한 제품을 노출하는 기능이 있는데, 내 제품에 달린 리뷰가 경쟁사 제품 리뷰처럼 한데 묶여 보인다”며 “판매자 간 가격 경쟁을 시키려는 의도겠지만 마진은 이렇게 계속 떨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비닐봉지까지 PB로 만들어 수익성 개선
소상공인들 “쿠팡과도 경쟁해야”
쿠팡은 최근 자체브랜드(PB) 제품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곰곰’ ‘탐사’ ‘코멧’ 등 생필품부터 신선식품을 망라한 19개 브랜드가 있다. 판매제품은 휴지와 마스크·커튼·빨래 바구니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팔레트와 검정 비닐봉지 등도 있다. 유씨는 “잘 팔리는 제품이 다른 업체에 노출될까봐 걱정했는데 오히려 쿠팡이 생활용품 상자 같은 사소한 것을 직접 만들어 팔더라”며 “우리로선 쿠팡이랑도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쿠팡이 판매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으니 뭐가 잘 팔리는지, 돈이 되는지를 알고 PB로 마진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도 PB 제품을 판매한다. 그러나 라면 등 대기업과 경쟁하는 제품을 PB로 내놓는 경우가 많다. 쿠팡처럼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상관없이 구매하는 제품을 PB로 만들어 소상공인들과 직접 경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는 2027년 전국이 ‘쿠세권’(쿠팡 로켓배송 생활권)이 되면 쿠팡의 한국 시장 지배력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쿠팡은 지난 10여년간 전국 30개 지역, 100곳 이상에 물류 인프라를 구축하며 빠른 배송으로 소비자를 묶어놨다. 실제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도 쿠팡을 탈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다만 쿠팡에 길들여 있던 소비 습관을 되돌아봤다는 소비자들도 적지 않다. 냉장고까지 샀을 정도로 ‘쿠팡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는 윤모씨(41)는 최근 쿠팡을 탈퇴했다. 윤씨는 “사과도 제대로 하지 않는 모습이 괘씸하다”며 “불편하겠지만 다른 걸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딸아이를 키우는 신모씨(42)도 “아이한테 이제 급하게 못 사니까 준비물은 미리 말하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퇴근이 늦어 평일에 장볼 시간이 마땅찮은 최모씨(54)는 주말에 마트에 다녀와 식재료를 소분해놓았다. 최씨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 내가 편했던 것을 알게 됐다”며 “나 하나 탈퇴한다고 쿠팡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소비자들이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쿠팡 탈퇴자는 많지 않더라도 매출의 10%가량은 감소하는 등의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오던 쿠팡으로서는 성장세가 멈칫하고 과징금 등 정부 제재가 나오면 장기적으로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을 고민할 때라는 지적도 있다. 권영국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대표는 “플랫폼 기업 독점 규제를 어떻게 할지, 수탈당하고 있는 중소 상공인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건지 등에 대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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