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 중 1명 '사치세' 냈다…"낡은 세법? 어느 정부가 마다하나"

2024-10-07

지난해 국내 차량 등록 대수는 2595만대다. 30세 이상 성인 2명 중 1명꼴로 자동차를 보유하는 시대다. 하지만 배기량 1000㏄를 넘는 차량에 여전히 찻값에 5%를 개별소비세(個別消費稅·이하 개소세)로 물린다. 자동차는 1977년 개소세 도입 당시 커피·냉장고·세탁기 등과 함께 사치품으로 분류됐다. 개소세는 과거 ‘특별소비세’로 불렸고, 예나 지금이나 ‘사치세’로 통한다. 이후로 국민 소득이 늘며 가전제품은 물론 목욕탕·수영장·스키장 입장료도 개소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자동차 개소세는 4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세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가 올해 7월 ‘세법개정안’을 마련하기 전까지 접수한 세법 개정 건의는 총 1412건이다.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경제 발전과 소득·자산 가격 상승 등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세제에 대한 각계각층의 불만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주식이나 부동산을 살 때 증권거래세나 취득세·종합부동산세와 함께 내는 ‘농어촌특별세(농특세)’도 손봐야 할 ‘고인 물’ 세제로 꼽힌다. 부유층에게 세금을 걷어 농어촌을 돕는 취지에서 1994년 도입했다. 당시 부자의 전유물이었던 주식·부동산 투자는 서민·중산층의 일상적 거래로 자리 잡았다. ‘가난한 농어촌’ 프레임이 30년 새 많이 바뀐 점도 고려해야 한다.

농특세법에 따르면 기업이 세액공제를 받으면 감면 세액의 20%를 다시 농특세로 내야 한다. 한국의 국가전략기술(반도체·배터리 등 7개 기술) 투자 세액공제율은 명목상 15%(중소기업 25%)다. 하지만 공제액의 20%를 다시 농특세로 내야 해 실제 세액공제율은 12%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연합회는 반도체 분야 농특세 부과를 한시적으로 유예해달라는 의견을 최근 국회에 전달했다. 하지만 농특세는 요지부동이다. 쉽게 걷을 수 있는 농특세를 포기할 수 없는 정부와 농어민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인지세’도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통장을 개설할 때 100원, 신용카드 신청서를 쓸 때 300원, 부동산 계약서(거래액 10억원 이상)를 쓸 때 35만원, 5만원을 초과하는 모바일상품권을 발행할 경우 400~800원 등 증표·종이를 발행할 때 붙는 세금이다. 1950년 도입해 75년째 유지 중이다. 액수가 크지 않은 데다, 일상에서 드물게 과세하기 때문에 ‘그림자 세금’으로 불린다.

농특세나 인지세가 현실감이 떨어져 폐지 또는 대규모 개편이 필요한 수준이라면, 상속세는 시대 변화를 빠르게 반영해 업데이트야 할 세목으로 꼽힌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2000년 이후 요지부동하다 최근 발표한 내년 세법 개정안을 통해 24년 만에 개편했다. 30억원을 초과한 상속·증여 시 50% 적용하던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10%포인트 내리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속세를 도입한 24개국의 평균 최고세율(27.1%)과 비교해 높은 편이다.

이상호 한경연 경제산업본부장은 “경제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낡은 상속세가 기업인의 가업 승계를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산층의 소비까지 가로막고 있다”며 “상속세를 적어도 다른 나라 수준으로 낮추고 부과 방식도 현행 유산세(피상속인 기준)에서 유산 취득세(상속인 기준)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세법상 자녀에 대한 소득공제액은 1인당 150만원이다. 2009년부터 16년째 고정돼 있다. 일본 38만엔(약 340만원), 독일 3192유로(약 470만원), 미국 4050달러(약 540만원, 2017년 기준) 등 주요 선진국에 못 미친다. 세계 최저 출산율의 불명예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 친화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연간 2000만원)도 2013년부터 11년째 그대로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2013년 2만8621달러(약 3100만원)에서 지난해 3만6194달러(약 4700만 원)로 10년 새 1.5배 수준으로 늘어나는 동안, 소득·물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해마다 '땜질식' 손보기를 반복하는 부동산세도 대수술이 필요하다. 양도세의 경우 너무 복잡해 세무사조차 양도세는 포기한다는 뜻의 ‘양포세’(양도세를 포기한 세무사)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국회에서 법을 개정하기 어려울 경우 정부가 시행령을 바꾸는 식으로 대응하는 바람에 누더기가 됐다. 문재인 정부 이후 이런 경향이 심화했다.

세목(稅目) 하나하나도 문제지만 세법 체계를 복잡하게 하고 가계·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이중과세’ 체계도 손질해야 한다. 대한상의는 최근 펴낸 ‘우리나라 이중과세 문제점 분석’ 보고서에서 국세·지방세 세목 25개 중 20개에서 이중과세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기업이 공장을 매입해 운영하면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도시지역분 재산세 ▶지역자원시설세 ▶지방교육세가 중복 부과된다. 이후 사업이익이 나면 ▶법인세 ▶미환류소득법인세 ▶법인지방소득세 등을 중복으로 내야 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2024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67개국 중 20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28위에서 8계단 뛰어올랐다. 일명 '30-50클럽(국민소득 3만 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 7개국 중에선 미국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조세정책'만 놓고 봤을 땐 34위로 경쟁력이 한참 떨어졌다. 지난해 순위(26위)보다도 8계단 밀려났다. 특히 법인세 경쟁력은 58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실제 국민 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조세부담률은 경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23.9%(2022년 기준)다. 2020년(14.7%) 이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낡은 세법, 기업을 옥죄는 세법이 민간의 성장을 발목 잡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기재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가뜩이나 역대급 세수(국세 수입) 결손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세법은 안정적인 세원을 확보하는 게 제1 목표”라며 “건전 재정과 조세 형평성을 유지하려면 세법을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 세목을 폐지하거나 세율을 자주 바꾸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증세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정부가 또박또박 들어오는 세금을 마다하겠느냐”며 “낡은 세금의 대부분이 오래 묵은 ‘그림자 세금’이라 감세하더라도 효과를 국민이 체감하기 어려운 점도 세법 개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바람직한 건 세수를 확보할 방안을 먼저 만든 다음 낡은 세법 개편에 나서는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24년 만에 상속세 완화를 밀어붙인 배경도 결국 국정 최고 책임자의 의지였다”며 “부처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탑-다운 방식으로 백지에다 세법을 다시 그리는 수준의 조세 설계(tax design)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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