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정신건강 예산 배분 비효율적”
중증정신질환 당사자·의료계 토로
“폐렴 환자가 죽어가는데 감기예방 사업하는 격이죠.”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가족과 의료계는 최근 정부가 수백억대의 예산을 투입해 심리상태에 문제가 있는 국민 대상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전마투)’을 두고 아쉽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국민 정신건강에 미칠 실효성을 고려했을 때 예산 배분의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정신건강정책 비전선포대회’에서 정신건강정책의 대전환을 천명했다.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정신건강 문제를 중요한 국가 어젠다로 삼고 적극 해결책을 강구해야 된다”며 △임기 내 100만명 상담서비스 제공 △중증 정신질환자 맞춤형 치료 위한 사례관리 체계 강화 △정신질환자 사회 복귀를 위한 재활·고용·복지서비스 혁신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25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와 국회는 경증 정신질환자 대상 국민 상담서비스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대비 중증 정신질환 치료체계와 지역사회 복귀 등 예산엔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국회 보건복지위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는 100만명 대상 각 8회의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마투 사업’에 2025년도 예산을 433억5500만원 규모로 통과시켰다. 당초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보다 약 36억원이 늘어난 508억3000만원이 편성했으나, 복지위 심사 과정에서 74억7500만원이 삭감됐다. 올 7월부터 진행된 사업의 예산 집행률이 14%에 그쳤고, 신청 인원도 3만여명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반면 윤 대통령이 함께 공언했던 지역사회 복귀를 위한 복지서비스 중 하나인 ‘동료지원쉼터’ 예산은 9억9000만원이 증액된 19억으로 통과됐지만, 현행 서울과 경기 지역 3곳에서 내년도 5개소로 확충하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쉼터별 예산 증액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쉼터는 위기상황을 겪는 정신질환자에게 강압적 접근이 아닌 지역사회 기반의 회복을 24시간 제공해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가족이 가장 바라는 서비스 중 하나다.
중증 정신질환자 사례관리를 위한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예산의 경우 260억원가량 증액됐지만, 복지위 관계자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인건비 부족분 및 법정수당 등을 반영한 수준”이라고 했다. 해당 예산안들은 현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달 말까지 최종 심의를 거친다.
의료계는 “빛 좋은 개살구 예산”이라고 꼬집었다. 차승민 전 국립법무병원 전문의는 “결국 분배의 문제인데, 백만명에게 돈 뿌리는 것보다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실효성이 높다”고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도 “중증 정신질환자의 자살시도와 재시도로 인한 입원이 많은데, 이들을 집중 치료하는 게 효과적”이라며 “다수의 국민 대상 예산투입이 표를 얻는 데 도움 된다는 정치권의 판단이 작용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신석철 정신장애인연합회 대표는 “장애인 자립지원센터가 있듯, 정신질환자를 위한 통합적 동료지원센터가 가장 필요하다”며 “당사자 발굴 및 자립생활 환경 조성에 국회·정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나현·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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