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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3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 사진=뉴스1
국방부가 의대증원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인턴·레지던트)를 사직한 병역 미필자들을 4년 간 군의관 등으로 분산 입영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의료사태로 사직한 전공의 약 3300명이 한꺼번에 입대할 경우 군 의료체계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현행 병역법상 인턴·레지던트 등은 '의무사관후보생'으로 별도 관리되고 있어 사직한 전공의들이 올해 일반병 복무를 원해도 입대는 불가능해진다.
국방부 관계자는 21일 언론브리핑을 통해 "의무사관후보생은 의사 면허를 소지한 병역 의무자가 인턴 과정에 들어갈 때 직접 지원한다"며 "의무사관후보생으로 병적에 편입되면 병역법 시행령 제120조에 따라 취소 또는 포기가 제한된다"고 밝혔다.
병역법 시행령 제120조에는 '수련기관에서 퇴직한 경우에도 의무사관후보생의 병적에서 제적하지 아니하고 의무사관후보생으로 입영한다'고 규정한다. 의무사관후보생이 퇴직하더라도 병적에서 제적되는 것은 아니므로 의무사관후보생으로 지속 관리해야 한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국방부는 최근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사(공보의)로 선발되지 못하고 입영 대기하는 의무사관후보생을 '현역 미선발자'로 분류해 별도 관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훈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의료사태로 사직한 전공의 약 3300명이 올해 입영대상자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최근 전공의 수련 중이었던 의무사관후보생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의무장교로 입영할 예정이었다"면서 "하지만 지난해 약 3300명의 의무사관후보생이 수련기관에서 퇴직해 올해 입영대상자가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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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증원 발표 등을 접한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난 지 1년이 다 된 가운데 이들 10명 중 6명 가까이는 동네 병의원에 취업해 근무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직했거나 임용을 포기한 레지던트 9222명 가운데 5176명(56.1%)이 지난달 기준으로 의료기관에 다시 취업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는 모습. / 사진=뉴스1
국방부는 매년 의무사관후보생 중 600∼700명을 군의관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200∼300명을 보충역으로 편입해 지역 의료기관에서 공보의로 근무하게 하고 있다. 연간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의무사관후보생은 1000명 내외이지만 지난해 초유의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올해 입영대상자가 기존의 3배 이상이 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법령상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요구대로 사직 전공의 전체를 올해 입영시킬 경우 내년부터 입영할 군의관이 없어 의료인력 수급 및 군 의료체계 운영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면서 "의료사태 발생 초기부터 정부는 분산 입영의 불가피성에 대해 수시로 설명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사직 전공의들이 수련을 마칠 때까지 입영을 연기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사직 전공의에게 입영 의향을 4차례 조사했다고 밝혔다. 사직한 전공의 3300명에게 병무행정 알림톡을 4회 보내 '입영 의향'을 조사했으나 약 150명만 답변해 정부의 입영계획 마련에 어려움이 있었다고도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입영 의향 조사를 통해) 올해 입대하겠다고 밝힌 분은 개인의 의사를 다 반영해드릴 예정"이라면서 "(의무사관후보생으로) 병역을 다할 수 있는 마지막 연령인 33세에 도달한 의무사관후보생 약 33명도 우선적으로 입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병역미필 사직 전공의들은 오는 2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국방부 훈련 개정안에 항의하는 집회를 예고했다. 의료계는 "입대를 앞둔 사직 전공의들은 현역 입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4년까지 기약 없이 대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며 "입대 시기를 결정할 권한을 국방부가 빼앗게 되면, 개인의 기본권이 침해될 뿐만 아니라 필수의료 공백 문제도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방부는 "이번 훈령 개정과 의무사관후보생 입영시기는 연관이 없다"며 "훈령을 개정하는 사유는 의무장교를 선발하고 남는 인원을 '현역 미선발자'로 지칭함으로써 기존 의무장교 선발 절차를 구체화하는 것일 뿐 입영 대기를 위한 새로운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