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건 미국 우선주의에 호응하는 물결이 전세계에서 일고 있다. 사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 트럼프에 맞장구를 치고 정면 충돌은 피하면서 실리를 챙길 기회를 엿보겠다는 심산이 깔린 행보다.
가장 앞장서고 있는 곳은 유럽이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22일(현지시간) 엑스(X)를 통해 “유럽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고 대서양의 방위산업 생산을 증강하면 우리 모두가 더 강해진다”고 밝혔다.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 역시 같은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방위청(EDA) 연례 포럼 연설에서 “우리가 (방위비를) 충분히 지출하고 있지 않다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말이 옳다. 이제는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지출 목표를 현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2%에서 5%로 상향해야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발맞추는 기세다. 따지고 보면 이는 트럼프의 대유럽 관세 압박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다. 방위비 증액을 이유로 관세 인상을 차단하려는 의도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번영·산업전략 담당 수석 부집행위원장이 지난 20일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유럽의 방위비 증액은 불가능하다”며 견제구를 던진 것도 이런 흐름에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가장 화끈하게 보따리를 풀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왕세자 겸 총리는 22일 트럼프와 통화하면서 향후 4년간 투자와 무역 확대에 6000억 달러(860조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빈 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개혁 조치가 “전례 없는 경제적 번영”을 이룰 것이라고 치켜세웠다고 한다.
트럼프 역시 2기 취임식 직후 사우디를 해외 첫 방문지로 삼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만큼 지난 1기 때처럼 양국의 밀월 관계가 형성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표적 반미 국가인 이란마저도 “트럼프를 암살하려한 적이 없다”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일대의 산불 진화에 소방 인력을 지원하겠다는 유화적 메시지를 냈다.
트럼프로부터 우크라이나전을 끝내라는 압박을 받고 있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전에 따른 러시아 경제의 부담을 알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전했다. 우크라이나전을 지속할 경우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가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의 말에 고심하고 있다는 맥락의 보도다.
10%의 추가관세 부과를 예고받은 중국 역시 충돌보다는 화해의 악수를 청했다. 딩쉐샹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균형 잡힌 무역을 촉진하기 위해 더 경쟁력 있고 품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수입하고 싶다”며 미국산 제품을 더 수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