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이젠 늙었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고왔던 얼굴엔 주름이 생기고, 술술 떠오르던 이름도 머릿속에서 흐릿해진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노화는 은밀하게, 그러나 틀림없이 찾아온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조용히 일하던 우리 몸의 NAD⁺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기 시작한다. 연구자들은 이 NAD⁺의 감소와 노화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세포 속의 작은 일꾼
NAD⁺의 원래 이름은 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Nicotinamide Adenine Dinucleotide)다. 한 번에 읽기도 힘든 이름이다.
그렇지만 이 물질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에 다 있다. 세포가 살아 숨 쉬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NAD⁺는 우리 몸에서 ATP(아데노신삼인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일에 관여한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ATP 에너지로 바뀌어야 근육을 움직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NAD⁺는 조연처럼 참여한다. 마치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숨은 조력자처럼.
NAD⁺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물질은 면역 반응이나 스트레스 대응에도 관여하고, 염증 조절이나 생체리듬 유지와 같은 생리 작용도 조절한다. 이렇듯 우리 몸에서 많은 일을 하다 보니, NAD⁺를 단순히 조연으로만 부르는 것이 공평해 보이진 않는다.
노화와 NAD⁺, 이 둘은 무슨 관계인가? 나이가 들면 어쩐지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자주 느끼게 된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괜히 피곤하고, 자고 일어나도 개운치 않다. 충분히 쉬었는데도 회복이 잘 안 된다. 왜 그럴까? 혹시 병이라도 걸린 걸까?
주변에서는 그냥 “늙어서 다 그래” 하고 넘기지만, 연구자들은 달랐다. 집요하게 파고들다가 발견한 게 바로 NAD⁺라는 물질의 변화였다.
나이가 들면 세포 내 NAD⁺가 조금씩 줄어든다. 그냥 노화가 낳은 결과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과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이게 노화의 퍼즐을 맞출 핵심 조각일 수 있다고 본 거다.
그렇다면 NAD⁺ 감소가 어떻게 우리를 늙게 한다는 말인가?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단백질이 등장한다. 서투인(Sirtuin)! 이름은 낯설지만 사실 우리 몸에서 큰 역할을 담당하는 효소다.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 조절하고, 스트레스가 닥치면 방어벽을 치는 역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단백질이 NAD⁺ 없이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한다는 데 있다. 서투인은 NAD⁺와 결합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NAD⁺가 없으면 서투인도 무기력해진다. 마치 기름 떨어진 자동차처럼.
뇌에서는 더 심각하다. NAD⁺가 모자라면 신경세포들 사이에 신호가 매끄럽게 오가지 못한다. 그러면 기억력이나 사고력이 뚝 떨어진다. 나이 들며 따라붙는 여러 질환의 그림자가, 사실은 이 작은 분자에서부터 드리워지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 나이가 들면 NAD⁺ 농도가 왜 줄어들까? 그 답은 간단했다. 늙게 되면 분해되는 NAD⁺ 양은 늘어나지만, 만들어지는 양이 이전에 비해 줄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또 다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가 들면 NAD⁺ 분해가 왜 더 일어날까? 이번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CD38이란 단백질이 하게 된다. 이것은 주로 면역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막단백질인데, NAD⁺를 분해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기에서 문제는 나이가 들수록 CD38의 발현과 활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체내 NAD⁺ 양은 속수무책으로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 스트레스나 과음, 고열량 음식 섭취, 수면 부족과 같은 바쁜 생활습관이 반복되면, 이번에는 NAD⁺를 만드는 과정까지 방해를 받는다. 결국 나이가 들면서 NAD⁺는 덜 만들어지지만, 분해는 오히려 더 많이 발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 결과는 뻔하다. 몸은 그만큼 노화의 속도를 더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뭐든지 가능한 이 좋은 세상에 사는데, 늙는 걸 막을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답을 쉽게 찾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NAD⁺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상상을 시작했다. ‘만약에 NAD⁺를 늘려주면 노화도 멈추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배고플 때 밥을 먹듯, 필요할 때 외부에서 줄어든 NAD⁺를 보충하면 되지 않겠냐는 발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NAD⁺는 분자 크기가 크고, 전기적 성질이 있다. 따라서 세포막을 쉽게 통과하지 못해 세포 안으로 들어가는 게 만만치 않다. 게다가 혈액과 세포에는 NAD⁺를 분해해버리는 강력한 효소까지 존재한다. <미션 임파서블>의 톰 크루즈가 아닌 이상 NAD⁺는 몸에 들어가자마자 쉽게 부서질 수밖에 없다. 어렵게 침투한 주인공이, 미션을 완수하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것이다. 정말 ‘임파서블 미션’이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우회적인 방법을 구상해냈다. 만들기도 어려운 NAD⁺를 억지로 주입하지 말고, 그 전 단계 물질인 ‘전구체(precursor)’를 넣는 쪽으로 말이다. NAD⁺ 전구체란 말 그대로 생체 내에 있는 NAD⁺가 만들어지기 전의 물질이다. 정말 참신한 선택이다. 전구체만 있으면 저절로 몸속의 효소가 이 물질을 NAD⁺로 변환시킨다.
NMN과 NR은 모두 NAD⁺에 대한 전구체다. NMN은 니코틴아마이드 모노뉴클레오타이드(Nicotinamide Mononucleotide)의 약자이고, NR은 니코틴아마이드 리보사이드(Nicotinamide Riboside)에서 왔다. 낯선 이름이지만, 모두 비타민 B₃에서 유래한 물질이다.
정말 NMN이나 NR을 섭취하기만 하면, 저절로 몸속에 있는 효소에 의해 이 물질이 NAD⁺로 변환될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연구자들은 쥐에게 NAD⁺ 전구체를 먹였다. 놀랍게도 쥐의 NAD⁺ 양이 늘어났고, 근력도 강하게 회복됐다. 혈당 상태도 나아졌고, 기억력까지 좋아졌다. 놀라운 일이었다. 일부 실험에선 쥐의 수명도 늘어난 결과까지 나왔다.
데이비드 싱클레어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는 노화 관련 전문가다. 그는 강연 중에 자주 말한다. “노화는 질병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학문적 해석과 철학적 논쟁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재 미국에서 NMN과 NR은 인기 있는 건강기능식품이다. 물론 이 단계를 넘어 ‘노화 치료제’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우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안전할지도 임상적으로 명확히 밝혀야 한다. 전에는 늙는 걸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이치로만 여겼다. 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노화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노화의 진행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는 날이 가까운 미래에 올지도 모르겠다.
<김정호 서강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