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 오시비엥침 외곽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사진). 1940년 5월 20일 호송 열차에서 최초의 수감자 30명이 내렸다. 나치는 수감자에게 일련번호를 붙였다. 폴란드 출신의 중범죄자 브루노 브로드니에비치(Bruno Brodniewicz)가 1번이었다. 그는 다른 수감자를 관리하는 수감자, 일명 카포(Kapo)가 되었다.
냉혹하고 잔인한 브로드니에비치는 자신에게 맡겨진 카포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며 ‘검은 죽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용소는 공포 분위기로 가득했지만 독방을 쓰며 좋은 식사를 했다. 귀중품을 몰래 숨겨 놓고 있을 정도였다. 전황이 기울어지며 강제수용소도 속속 폐쇄 혹은 해방되었다. 브로드니에비치가 아우슈비츠뿐 아니라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카포 노릇을 하게 된 이유다. 결국 그는 『안네의 일기』의 안네 프랑크가 수감되었던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로 이송됐는데, 영국군은 1945년 4월 15일 해당 지역을 점령하며 수용소를 해방했다.

이는 브로드니에비치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의 폭정에 시달리던 다른 수감자들이 들고일어나 그와 다른 카포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브로드니에비치는 4월 15일 혹은 16일 집단 폭행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권력을 잔인하게 휘두르며 사욕을 취하던 작은 폭군의 비참한 몰락이었다.
강제수용소에 보내진 건 유대인만이 아니었다. 브로드니에비치를 포함한 30명의 최초 수감자는 모두 폴란드의 강력범죄자였다. 강제수용소가 아우슈비츠에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독일이 점령한 땅 곳곳에 수용소가 세워졌다. 하지만 목적은 모두 동일했다. 순수한 아리안족을 더럽히는 ‘가짜 인간’을 최종 해결하는 것이었다.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간 것은 생명뿐 아니라 인간성 그 자체였다. 적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혐오하고 마는 선동의 목소리를 우리가 늘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