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이펙) 정상회의에서 회원들은 정상선언과 각료선언을 ‘패키지딜’로 내놓으며 다자무역 체제를 지지한다는 표현에 절충점을 찾았다. 관심을 모았던 ‘자유무역’ 언급이 아예 빠지는 것은 막은 셈이다. 회원들은 최근 몇년 사이 가장 큰 입장차를 보인 미·중간 평행선을 좁히려 ‘경주 선언’ 타결 당일 아침까지 밤샘 협상을 벌였다.
2일 외교가에 따르면 올해 에이펙은 보호무역주의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으로 최종 합의문 도출에 난항이 예상됐지만, 정상급과 각료급에서 각각 나오는 결과물을 함께 처리해 답을 내놨다. 정상들 간 만장일치로 탄생하는 경주 선언에는 자유 무역의 상징인 세계무역기구(WTO) 관련 문안을 빼는 대신 외교·통상 장관들의 공동성명에는 포함시켜 에이펙 기본 정신은 지켰다는 평가다.

난이도 높은 정상선언 도출 과제를 앞두고 외교부는 에이펙 경험자를 포함한 엘리트 실무진을 따로 영입해 최정예 협상팀을 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팀은 에이펙 정상회의 주간 직전 주말부터 경주에서 각 회원과 밀도 높은 협상에 들어갔다.
관세와 기술·자원을 두고 무역 갈등 중인 미국과 중국은 다자무역 표현에 대해 강경하게 대립했고, 정상선언 타결 전날까지도 타협안을 찾기 힘들었다고 전해진다. 의장국인 한국으로서는 WTO 언급을 정상선언에서 빼기 원하는 미국, 다자주의를 강조하면서 일방주의와 보호주의 반대 입장을 표한 중국 사이에 접점을 찾아야 했다. 자칫하면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에이펙에서 창설 이래 첫 공동선언 불발 및 의장국 선언만 나온 선례가 재현될 위기였다.
그러나 당시보다도 자국 우선주의 기조가 강해진 미국의 입장에 유사입장국들조차 쉽게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마지막 순간에 찾은 극적인 합의점은 WTO와 다자무역 체제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표현은 제외하되 이를 반영한 각료회의 성과를 평가한다는 우회로였다. 결국 2021∼2024년 정상선언문들에서 빠짐없이 포함했던 “WTO를 핵심으로 하는(WTO at its core) 규칙 기반의 다자간 무역 체제”라는 표현이 이번에는 빠졌다.
통상 에이펙 정상선언문에 들어갔던 WTO 표현이 제외된 것은 중국이 한 발 물러섰기에 가능한 측면도 있었다고 분석된다. 다음 에이펙 의장국인 중국이 협상 결렬 분위기를 이어받지 않으려 했을 것이란 해석이다.
에이펙 21개 외교·통상 장관들은 전날 합동각료회의(AMM) 결과물을 담은 공동성명에서 “무역 현안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WTO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며 “WTO에서 합의된 규범이 글로벌 무역 촉진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어 “WTO에서 다자간 협상, 특히 복수국간 협상이 회원국들의 관심사를 이끌고 WTO의 적실성(실제에 들어맞는 성질)을 높이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성명은 여러 도전에 직면한 WTO가 오늘날 현실에 보다 적합하고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도 명시했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한 글로벌 통상환경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다”며 “합의에 기초한 다자주의 정신 아래 에이펙의 지속적인 협력을 매우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AMM회의는 지난달 30일 끝났지만 이틀 뒤 경주 선언과 함께 발표됐다. 외교부에 따르면 AMM 공동성명은 지난달 31일 자정에 타결하는 것을 목표로 했지만 세부 내용 협상이 새벽까지 여러 차례 좌초되면서 1일 오전 7시30분쯤 실무협상이 타결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2025년의 성과와 에이펙의 방향성에 대한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컨센서스(만장일치)로 합의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의장국의 리더십과 밤새 자리를 지켜준 회원 대표단의 공동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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