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계의 코인’ 해운업 경기 사이클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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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은 불황기 저점에 주식을 사서 호황기 고점에 팔아 수익을 극대화하는 ‘사이클 투자’ 전략이 통하지 않는 산업이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나 2023년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상선 공격으로 느닷없이 호황이 찾아온 것처럼, 해운업에서의 호황과 불황은 예상치 못한 이벤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잦다. 이렇게 종잡기 힘든 해운업에도 투자 성공을 이끄는 공식은 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재테크 콘텐트 ‘머니랩’은 ‘주식계의 코인’이라 일컫는 해운업의 경기 사이클 읽고, 투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한다.
◆조선업과 맞물려 돌아가는 해운업=해운업 호황은 수에즈 운하 사고(2021년), 예멘 후티 반군 공격(2023년) 등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촉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글로벌 경기와 연관성이 크다.

경기가 좋아지면 수요 측면에서 물동량(해상으로 이동하는 화물의 양)이 늘어 해운사 이익이 증가하고, 반대로 경기가 나빠지면 물동량이 줄어 이익이 감소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이 발표하는 ‘세계 경제성장률 예상치’나 ‘글로벌 경기선행지수’ 등 경기 지표가 해운업 경기를 예측하는 일종의 선행 지표가 될 수 있다.
공급 측면에서 해운업 경기는 조선업 사이클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해운업에 호황이 오면 해운사는 실어나를 화물은 넘쳐나는데, 배는 부족해진다. 필요한 배를 동원하기 위해 조선사에 선박 발주가 증가하면서 조선업 호황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늘어난 발주로 2~3년 후 선박 공급이 늘면, 이번엔 오히려 화물량에 비해 배가 남아돌면서 해운업에 불황이 찾아온다. 불황기에 해운사는 다시 선박 발주를 줄이면서 조선업에 불황이 온다. 다시 선박이 부족해져 운임이 오르면 해운업에 다시 호황이 오는 사이클이 반복한다.
조선업 호황이 한창인 올해는 해운업 투자로 재미를 볼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 이재혁 LS증권 연구원은 “신규 선박 인도와 물동량 둔화 등으로 올해 컨테이너선 시황은 우하향할 전망”이라며 “철광석·곡물 등을 운송하는 건화물선(벌크) 시장도 중국 건설업의 신규 착공 부진과 라니냐(동태평양 수온이 낮아지는 이상 기후)로 인한 브라질발 곡물 물동량 부족 등으로 수요 둔화를 예상한다”고 말했다.
◆해운사 주가는 왜 변동성이 클까=해운업의 수요(물동량)와 공급(선박)은 원래 균형가격에 수렴하기 어려운 구조다. 운임이 아무리 올라도 화주(화물을 운송하려는 사람이나 기업)는 고객과 약속한 기간 안에 화물을 보내야 한다. 운임이 내려간다고 고객 주문을 획기적으로 늘리기도 어렵다.

선박 공급도 마찬가지다. 운임이 올라도 선박은 발주에서 인도까지 2~3년은 걸리고, 운임이 내려도 평균 20년은 사용해야 하는 선박을 갑자기 줄일 수도 없다. 가격 변화에도 수요와 공급이 탄력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구조다. 운임이 급등했다 급락했다 널뛰는 이유도 이런 수요·공급의 비탄력성 때문이다. 갑자기 물동량(수요)이 늘어도 운송에 필요한 선박이 바로바로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운임이 치솟는다. 반대로 물동량이 줄어도 바다 위에 떠 있는 선박 공급을 곧바로 줄일 수 없기 때문에 운임이 곤두박질친다.

해운사 매출은 ‘운임(P)×물량(Q)’의 함수이기 때문에 널뛰는 운임 등락에 따라 실적과 주가도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런 변동성 탓에 오랫동안 해운업을 분석한 전문가조차 해운업 투자를 ‘도박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LS투자증권이 2011년 1월부터 2020년 2월까지의 데이터로 ‘사이클 투자’ 전략(운임의 저점 매수 후 고점 매도)의 효과를 검증한 결과, 장기 투자나 미래 호황을 기대한 투자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운임이 갑작스러운 이유로 변동하는데다, 그 변동폭도 크기 때문이다.
◆운임 갑자기 뛸 때가 매수 기회?=그렇다면 해운주에는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해운업에선 ‘최적의 시점을 포착해 치고 빠지기’식 투자를 권한다. 최적의 시점이란 해운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 불일치로 운임이 급격히 튀어 오를 때다. 즉 보내야 할 화물은 넘쳐나는데, 배는 부족해 운임이 막 오르기 시작할 때다.

이런 최적의 시점을 포착하려면 해운업 호황의 3가지 조건이 겹치는 시기인지를 확인해 봐야 한다. ▶첫째, 화물이 넘쳐나는지(물동량 증가) ▶둘째, 배가 부족해져 항구에 계류돼 이른바 ‘놀고 있는’ 선박이 줄고 있는지(계선율 하락) ▶셋째, 이런 결과로 운임이 증가하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 3가지 조건이 교집합을 이루는 시점이 해운업 투자로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삼위일체’ 시점이다. 이 시점에 주식을 사서 1~2개월의 단기 투자로 접근하는 것이 수익률 극대화에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사이클 분석이 쉽지는 않지만, 해운업에도 업황의 고점과 저점을 알리는 신호가 있다. 먼저 호황의 정점이 오면 중고선박 가격이 신조선 가격보다 높아진다. 자동차로 따지면 중고차 가격이 신차를 추월하는 현상이다. 정점에 다다른 운임으로 최대한 이익을 남기려는 해운사들은 새 배를 받을 수 있는 2~3년의 시간을 기다릴 수 없다. 이 때문에 새 배보다 더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앞다퉈 중고선을 사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감가상각(자산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하는 것)이 진행된 중고선이 새 배보다 비싸지는 상황은 정상은 아니기 때문에, 이때는 해운주를 매도해야 할 타이밍으로 꼽힌다.

업황의 저점을 알리는 신호는 노후선가가 해체선가에 근접하는 경우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노후 중고차 가격이 폐차로 처분해 받을 가격에 근접할 정도로 하락할 때다. 오래됐지만, 충분히 운항할 수 있는 선박인데도 운송할 화물이 없으면 쓸모가 없어진다. 이런 배는 별도의 비용(계류 비용)을 치르면서 항구에 묶어놓기보다 차라리 해체해 고철로 파는 게 이득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해운업 불황은 다른 산업보다 상당히 길게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저점 신호에도 주식 매수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선주 띄운 트럼프, 해운주엔 악재=증시 전체를 강타 중인 ‘트럼프 충격’은 해운업 투자자가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다. 국내 조선업 호황에 불쏘시개가 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중 무역전쟁은 해운업에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관세율 인상과 중국 국적 선박에 대한 항만 수수료 부과 등으로 무역장벽을 높일수록 물동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18년 하반기부터 2019년 사이에도 글로벌 물동량은 감소 흐름을 보인 적이 있다. 배세호 iM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상호관세 적용으로 에너지·벌크·컨테이너선 시장 모두 영향을 받겠지만, 상대적으로 수출 품목이 많은 컨테이너 물동량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친환경 선박으로의 교체를 유도해 조선업 수퍼사이클을 앞당기고 있는 환경 규제는 해운업에는 위기이자 기회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존 선박에 친환경 설비를 부착하고 노후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는 것은 해운사 입장에선 비용이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제 비용을 근거로 운임을 올릴 수 있다면, 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류제현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탄소 배출 비용이 늘면, 필연적으로 친환경 선박 활용 여부가 해운사의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전략적인 친환경 설비투자(CAPEX) 지출 비중이 큰 해운업체일수록 경쟁에서 선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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