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끝나지 않은 학살과 전쟁, 양심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
창작극회가 지구상의 끝나지 않은 학살과 전쟁, 그리고 양심과 인간성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작품을 올린다. 살고자 하는 강한 욕구와 죽고자 하는 절망의 대립이 선명하게 포착돼 매우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다 보니 어느 극장도 공연하지 않으려고 하며, 어느 관객도 보려고 하지 않은 바로 그 연극이다.
19일부터 21일까지 전주 창작소극장에서 선보이는 제182회 정기공연 ‘문밖에서(연출 조민철)’는 독일의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1921-1947)가 2차대전에 참전해 겪은 트라우마로 스물여섯 나이로 죽기 전 쓴 작품이다. 어린 나이에 병사한 작가는 이 작품이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독일과 독일인에게 자신들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반면교사로 작동 하기를 바랐을 터다.
무대 위 배경은 1946년,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 베크만이 등장한다. 그러나 더이상 그를 위한 집도, 반기는 사람도 없다. 이전과 많은 것이 달라졌으며 상실된 세계만 눈앞에 있다. 새로운 생활을 위해 아내, 한 소녀, 과거의 사단장, 클럽지배인, 부모 등을 차례로 찾아가지만 그 곳에는 한결같은 혼란과 망각만 존재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 문들이 그의 눈앞에서 닫힌다. 문밖에서 문 안으로의 진입은 매번 거절당하고, 밖의 추위와 사나운 바람 속에 서 있을 뿐이다. 그는 문을 두드리며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살란말이야!”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이 작품은 현실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그려 내거나 전망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소외와 방향 감각 상실이라는 위기에 직면한 시대 상황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 사회의 혼란상과도, 아니 멀리 갈 필요 없이 현재의 대한민국의 상황과도 겹쳐보인다.
무대 위에선 이부열, 배건재, 류가연, 강정호, 김수연, 김서영, 최나솔, 장현채, 도건형 배우가 열연을 펼친다.
조민철 연출은 “전쟁을 겪은 직후, 작가가 병을 키워가며 썼던 이 작품은 오늘 이 땅의 청년들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며 “불확실성에 더해 희망을 품고 나선 발걸음은 멈추어지고, 가볍게 취급되어 이용당하고 좌절을 겪기를 반복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을 오가며 선택의 자유마저 부정당하던 베크만의 이야기는 2차대전 후 독일인의 표상이기도 하지만 오늘을 거느린 우리 모두에게도 공감받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해 무대에 올릴 결심을 했다”며 “왜 베크만의 절규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연상시키는가”라고 연출의 변을 밝혔다.
공연 시간은 평일 오후 7시 30분, 주말 오후 3시다. 티켓은 전석 2만 원이며 비지정석으로 운영된다. 카카오톡에 창작극회를 검색하거나 인터파크티켓으로 예매할 수 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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