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어른들 수십명과 좁은 방에 갇혔다. 아침저녁 점호를 하고 24시간 감시를 받아야 했다. 이곳은 외국인보호소,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출국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호’의 이름으로 가두는 시설이다. 본국의 박해를 피해 기적적으로 홀로 한국에 도착한 아동 A는 변호사를 만날 때까지도 본인이 왜 여기 갇힌 것인지, 언제까지 갇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2023년 3월23일, 헌법재판소는 A의 사건에서 출입국관리법상 ‘이주 구금’ 제도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재판도 영장도 없이 무기한 구금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헌재는 법 조항을 2025년 5월31일까지 개정하라고 결정했다.
이런 결정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부로 갇혔을까. 대한민국에서는 연간 4만명이 넘는 사람이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다. 출입국 인구 규모가 훨씬 큰 영국(2만7000명), 독일(5000명) 등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많은 숫자다. 이렇게 강제력 행사와 구금시설 중심으로 출입국 정책을 운용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렵다.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구금 위주 정책은 오히려 강화되었다. 2024년 전국 29개 이주 구금 시설은 유례없는 과밀 수용에 시달렸다. 최근 5년 중 가장 많은 이주민이 구금되었고, 부모 없이 갇힌 아동의 숫자도 100명을 훌쩍 넘었다. 위헌임이 명백해진 제도를 개선하기는커녕 ‘매진 임박’ 상품을 사재기하듯 함부로 구금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 같았다.
법 개정 시한을 7개월여 앞둔 2024년 10월, 정부는 뒤늦게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논의는 빠르게 정부안 중심으로 굳어졌다. 법안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재판도 없이 최장 36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도록 하고, 필요하면 무한정 재구금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헌재가 요구한 ‘독립적, 객관적인 심사 절차’는 법무부 내부 위원회인 ‘외국인보호위원회’가 대신하게 됐다. 정부가 내놓은 ‘개선안’이 위헌성을 해소할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한데도, 다른 대안은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A의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을 함부로 가둬놓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법무부가 이제는 스스로 ‘개선’을 위한 법을 만들고, 그것이 그대로 통과되고 있다.
지난 17일 정부안을 골자로 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1소위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A가 청구하고 헌법재판소가 답하며 시작된 출입국관리법 개정 논의는 부실한 절차를 바로잡고 구금 기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2년 만에 이 논의는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더 길게 구금해도 되는 대상’을 명시하는 규정이다.
정부가 개정법에서 지목한 대상은 난민 신청자다. 이제 대한민국은 난민 신청자에게 신체적 불이익을 주는 것을 법에서 정하고 있다.
애초에 난민 신청자는 국내법상으로도 출국시킬 수 없다. 따라서 이 법은 ‘강제퇴거명령의 집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도의 목적 자체와도 모순된다. 어차피 출국이 불가능하다면 애초에 강제퇴거명령이 내려지지 않아야 한다. 단순히 난민 신청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장기 구금이 가능하도록 한 법제는 난민협약과 자유권규약 등 국제법에 정면으로 반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우리는 지난해 12월, 하마터면 ‘영장 없이 길에서 아무나 끌려가 갇히는 나라’에 살 뻔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미 오랜 현실이다. 이를 바꿔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앞에서도, 정부는 ‘난민 구금법’ ‘외국인 처벌법’으로 답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된 후에도 억울하게 갇힐 사람들은 이제 누구에게 구제를 청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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