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한국 여인들이 사랑한 농기구 ‘호미’

2025-04-08

봄이 왔다. 봄은 식탁에 냉잇국을 올려야 비로소 찾아오는 법이다. 호미와 소쿠리를 들고 논두렁에 나간다.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는 냉이를 캔다. 뿌리가 잘려 나가지 않게 온전하게 캐내려면 호미를 땅속 깊이 박아야 한다. 한시간도 되지 않아 소쿠리가 가득 찬다. 밭일하는 데 호미만 한 것이 없다. 오늘 저녁은 된장을 풀어 슴슴하게 끓인 냉잇국으로 온전한 봄을 즐길 것이다.

호미는 논이나 밭에서 종자를 심거나 김을 맬 때 쓰는 농기구다. 지역에 따라 호맹이·호메이·호무·홈미·호마니·허메·허미·희미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쇠로 된 날과 나무로 된 자루로 구성돼 있는데 쇠날은 ㄱ자 형태로 구부러졌다. 앞쪽은 땅을 파기 쉽게 밑은 뾰족하고 위는 넓은 모습이며, 뒤쪽은 자루와 연결되기 편하게 날카롭다.

호미는 만만해 보이지만 큰 기계가 할 수 없는 정교한 작업을 너끈하게 해낸다. 씨앗을 심고 김을 매고 고구마를 캐는 일은 트랙터가 아닌 호미의 영역이다. 호미는 농사에 특별한 경험이 없는 사람도 일단 밭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묵정밭도 호미 한자루만 들면 해볼 만하다고 덤벼들게 만드는 끝내주는 연장이다. 호미가 세계 최대 쇼핑몰 ‘아마존’에서 히트 상품이 된 것은 감히 모종삽이 넘볼 수 없는 탁월한 효용성 때문이다.

호미는 용도에 따라 날 모양과 자루 길이가 다르다. 쟁기 보습처럼 날 끝이 뾰족하고 위가 넓은 논호미가 있고, 낫처럼 날이 긴 밭호미가 있다. 자루가 길어 옥수수밭처럼 이랑이 넓은 밭을 매는 데 편리한 세모형 호미가 있고, 물속에서 작업할 땐 기세호미·낙지호미·바지락호미 등 다양한 종류의 호미를 쓴다. 어떤 모양이든 호미는 그것을 이용해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엄마의 희생이 담긴 도구다. 그래서 호미는 그 탁월한 쓰임새보다도 그것을 들고 밭에서 살아야 했던 엄마의 고단함을 떠올리게 하는 그리움의 연결 고리다.

한국의 여인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콩밭 매는 아낙네다. 머리에 수건을 쓰고 밭고랑 사이에 앉아 호미질하는 아낙네의 모습은 전형적인 농가의 풍경이다. 가끔씩 어린아이를 그늘 밑 나무에 끈으로 연결시켜놓고 호미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호미로 고랑과 두둑을 치면서 아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느라 엄마의 마음은 바쁘다. 나도 그런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함부로 살 수가 없다. 내일은 호미를 들고 달래를 캐러 나가봐야겠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