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돌봄시간 확대’가 아동학대일까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

2024-06-29

(17)유치원·어린이집 이용시간 확대

교육 정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는 최근 교육 기사에 자주 쓰이는 단어의 의미와 관련 논란에 대해 교육부 출입기자가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아동 발달 무시한 12시간 기관 보육은 아동학대 수준.’ 27일 교육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유보통합’ 계획안을 발표하자 교원단체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즉각 정책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전교조는 특히 “희망하는 영유아 누구나 1일 12시간 (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에 대해선 ‘아동학대’라고 날을 세웠습니다.

전교조는 “영유아 시기는 가정에서의 안정적인 애착 관계와 개별적 보호가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시기”라며 “보호자의 장시간 노동을 위해 12시간의 기관 보육을 하는 것은 질 높은 교육도, 보육도 아닌 아동학대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노동시간 단축, 아빠 육아휴직 의무화 등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저출생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덧붙였죠.

영유아 시기 가정의 애착 관계가 중요하고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견엔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만 돌봄 시간 확대가 아동학대란 의견은 언뜻 봐선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교육부의 정책은 ‘모든 영유아는 기관에서 12시간 머물러야 한다’는 강제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찍 집에 갈 수 있는 아이를 기관에 붙잡아두는 것은 아니란 얘기죠.

‘12시간’이란 숫자가 자극적으로 보이지만, 지금도 이미 국공립·직장어린이집의 평균 운영시간은 12시간 이상입니다. 사립·단설유치원도 10시간이 넘습니다. 그렇다고 해당 기관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이 10시간, 12시간씩 기관에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다. ‘운영시간’과 아동 한 명 한 명의 ‘개별 이용시간’은 다르니까요. ‘상황에 따라 저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문을 열어두겠다’는 것과 ‘모든 아이가 저녁에도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돌봄 확대가 아동학대라 보는 이들은, ‘원하는 누구나’ 장시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정책이 결국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도 기관에 머물게 할 것’이라 보는 것 같습니다. 돌봄 제공이 늘면, 정말 집에 일찍 갈 수 있는 아이도 늦게까지 남아있게 될까요?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저녁 늦게까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남겨두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요? 세상 어딘가엔 제도를 악용하는 책임감 부족한 부모도 있겠지만 극히 일부겠죠. 대부분의 부모는 퇴근과 동시에 가능한 빨리 아이를 데려가려 노력할 것입니다.

비슷한 논란은 초등학교 돌봄 정책인 늘봄학교를 두고도 나왔습니다. 교육부가 원하는 가정에 ‘오후 8시까지’ 학교에서 돌봄을 제공하겠다고 하자 교원단체에선 아동학대라고 비판했습니다. 정부 정책은 ‘집에 가도 되는’ 아이를 학교에 붙잡아두겠다는 것이 아니라, 맞벌이 등의 이유로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시간이 생기는 아이를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봐준다는 취지인데도 말이죠. 현재 초등학생의 사교육 이용률이 중·고등학생보다 높은 것은 학원이 돌봄 기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부모 퇴근 시간 전 학교를 나온 아이들이 갈 곳은 학원이니까요. 아이가 태권도장에 가면 아동학대가 아니고, 학교에 남아있다면 아동학대란 말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요즘 부모 사이에선 육아를 위한 준비물은 ‘근처에 사는 조부모’란 말이 나옵니다. 부모의 힘만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저 역시 아이가 어릴 땐 가족의 도움을 받았고, 몇 년 전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 이사 온 뒤에는 태권도장, 미술학원 등의 도움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남편과 업무 일정을 조정하면서 별 탈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마음 한쪽엔 ‘저녁에 둘 다 갑자기 일이 생기면 어쩌지’란 불안감이 있습니다. 이런 불안감은 추가 출산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돌봄 강화 정책은 학부모에게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 늦게까지 맡기는 것은 아니더라도, 갑작스럽게 일이 몰려 퇴근이 늦어지는 날엔 좀 더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육아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할머니가 주변에 사는 것에 비할 바는 못되겠지만, 가정 힘으로 역부족일 때 국가가 도와줄 것이란 믿음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전교조의 말처럼 노동시간 감축은 출산율 반등을 위한 필수 조건이고, 국가는 노동시간 단축에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부터 모든 직장인의 노동시간이 무 자르듯 줄어드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동시에 돌봄 강화 정책도 필요합니다. ‘노동시간 감축’과 ‘돌봄 시간 확대’가 함께 추진하기 어려운 과제는 아니니까요. 노동시간이 짧은 사회로 나아가는 동안 돌봄 정책이 받쳐주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다만 정부는 교원단체가 왜 이런 비판을 하는지 되새겨볼 필요는 있습니다. 전교조는 현재 정부는 노동시간 감축과 돌봄 강화를 함께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 강화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설명했습니다.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비판입니다.

교사 사이에선 돌봄 강화 정책이 교사들의 업무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도 읽힙니다. 추가 인력이나 재정 지원 없이 기관 돌봄 제공만 늘린다면 교사들을 갈아 넣어 아이들을 키우는 것밖에 되지 않겠죠. 교사들이 힘들어지는 것은 학부모들도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진정 가정의 육아 부담을 나눠서 지길 원한다면, 교사들의 두려움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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