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서울 성동구 마장동 유모씨의 집에 가스보일러가 들어왔다. 겨울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매일밤 연탄을 갈아왔던 장애인인 유씨는 이사후 처음으로 잠을 설치지 않고 밤을 보낼 수 있게됐다. 성동구가 올해 처음 실시한 ‘연탄제로 지원사업’의 성과였다.
유씨는 “이제 연탄이 꺼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적잖은 나이에 연탄을 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구청에서 나서서 보일러를 교체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유씨처럼 아직까지 연탄보일러를 쓰는 집이 서울 시내에만 1000여가구가 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스중독 사고 등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보일러 교체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노후 주택 집주인을 확인하지 못해서 또는 재개발을 기다리며 교체를 미루고 있는 가구들이 여전히 적지 않은 탓이다.
2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모경종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기준 서울시 내 연탄 난방 가구는 총 1386가구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백사마을이 위치한 노원구가 497가구로 가장 많았고, 성북구(187가구), 강남구(121가구), 서초구(116가구)에는 100가구 이상이 있었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서울시 내 연탄 난방 가구는 25개 자치구 2곳(양천구, 강서구)를 뺀 전역에 걸쳐 있다. 서대문구(89가구), 관악구(83가구), 도봉구(39가구), 송파구·은평구(각 34가구), 동작구(33가구) 등 30가구 이상인 자치구도 총 10곳에 이른다.
실제로 연탄 사용 가구는 서울시 파악 규모보다도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연탄제로 지원사업’을 추진중인 성동구에는 모두 16가구가 연탄 난방을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성동구는 연탄 쿠폰 지원 이력이 있는 가구를 포함하면 관내 연탄 난방 가구가 이보다 많은 26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무허가 주거 가구 등을 포함하면 연탄사용 가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후화 된 보일러 등으로 화재 위험, 가스누출 사고 우려가 커지면서 지자체들은 관내 연탄보일러 교체를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좀처럼 속도는 나지 않고 있다. 집주인의 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도시가스관을 새로 깔기 위해 필요한 주변 땅주인의 허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에 연탄 보일러를 교체한 한 가구는 집 주인의 행방을 찾는 데 몇개월이 걸렸을 정도다.
재개발에 대한 기대도 연탄보일러 교체를 늦추는 원인중 하나다. 재개발을 앞둔 지역에서는 굳이 보일러를 바꿀 필요 없이 익숙한 연탄 난방으로 버티는 것이 낫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시도 연탄 난방 가구를 포함한 취약계층 중 매년 약 200가구에 도시가스를 설치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비슷한 이유로 진행이 쉽지는 않다. 박원순 전 시장 재임시절인 2019년 3월 서울시는 “14개 자치구, 34개동의 1638가구에 도시가스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시 파악됐던 가구들의 난방 현황이 별도로 관리되고 있지는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가스 업체를 통해 난방 변경이 가능한 곳을 물색하고 이들에게 도시가스를 우선 공급하려고 한다”면서도 “특히 재건축·재개발을 앞둔 지역에서 난방 방식을 바꾸지 않으려는 가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연탄 난방을 없애는 것보다는 연탄 난방 가구에 에너지 바우처나 사회의 기부 등으로 연탄을 무료 공급하는 정책이 우선시 돼 왔다. 주민들은 한편으로 연료비 부담도 우려했다. 취약 계층에게 난방비가 일부 지원되기는 하지만, 연탄은 거의 무료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동구 등이 연탄 난방 제로화에 나선 것은, 연탄 난방의 불편함과 안전 사고 우려 때문이다. 여전히 겨울철마다 연탄 난방을 하다 일산화탄소에 질식된 사망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충북 제천에서 50대 남성이 연탄을 교체하다 넘어져 화상을 입고 숨진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집이 춥거나 위험해서 죽거나 다치는 일이 있으면 안된다. 주거에서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있게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