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시]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명치 끝이 아파오면…

2025-11-03

우리 모두 '민박' 중인 지구의 백성들

소리없이 함박눈이 내리는 시간이 오고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반달만한 집과

무릎만한 키의 굴뚝 아래

쌀을 씻고 찌개를 끓이며

이 세상에 여행 온 나는 지금

민박 중입니다

때로 슬픔이 밀려오면

바람 소리려니 하고 창문을 닫고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명치끝이 아파오면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낮은 천장의 불을 끕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손톱만한 저 달과 별

내 굴뚝과 지붕을 지나 또 어디로 가는지

나뭇잎 같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오늘밤도 꿈속으로 민박하러 갑니다

- 권대웅 '민박' 전문. <시집 '조금 쓸쓸했던 생의 한때'(문학동네)>

모든 것이 적멸(寂滅)에 드는 시간이다. 11월이 되면 빗줄기도 조용조용 저녁 어스름에 흩뿌린다. 낙엽은 사그락거리면서 거리를 배회한다. 걷다가 지친 낙엽도 '알 수 없는 쓸쓸함에 명치 끝이 아파오면/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원래 있던 그 자리로 돌아간다.

어느 날 창문을 열면 소리도 없이 첫눈이 내려서 세상을 뒤덮고 있으리라. '때로 슬픔이 밀려오면/ 바람 소리려니 하고 창문을 닫고' 긴 겨울을 보내야 할 때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슬픔이거나 기쁨이 이사를 하고, 소리 없는 함박눈처럼 이별이 흔해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또 다른 봄이 올 거라는 희망으로 다가오는 겨울을 견뎌야 할 때다. 우리 모두 '민박' 중인 지구의 '백성'들이니. oks3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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