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서 학교는 더 이상 교육의 주인이 아니다. 학교 밖에 난립한 각종 기관과 행정조직이 교육을 둘러싸고 있고, 예산과 권한은 학교 바깥에 머물러 있다. 통상 교육청 예산 중 인건비 등 경직성 예산은 70%, 교육청 추진사업예산 20%, 수련원 등 직속기관 예산 5%수준이고, 학교가 기획해 쓸수 있는 기본운영비는 불과 5%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학교가 스스로 교육을 설계하고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 수 없다.
학교는 책임만 지고 권한과 자원은 갖지 못한 채 쏟아지는 각종 정책의 집행기관으로 전락해 있다. 이 구조가 지속되는 한, 어떤 교육정책도 교실 안에서 완성될 수 없다. 결국 학교는 행정과 복지가 중심이 되고, 교육 기능 자체는 주변으로 밀려나고 있다. 학교 단위 예산 자율권을 실질적으로 확대하지 않는 한, 선생님은 지침과 보고에 묶일 수밖에 없다. 권한은 주지 않으면서 성과만 요구하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교육 현안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교권침해를 넘어 고교학점제, 학생맞춤통합지원제도까지 교원 사회를 뒤흔드는 이슈는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 과정에서 정작 현장의 목소리는 점점 더 배제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교육 혁신을 관료나 이론가가 성공시킨 사례는 거의 없다. 교육을 실제로 바꿔온 힘은 언제나 교실을 아는 현장 전문가에게서 나왔다. 그럼에도 오늘의 교육정책은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설익은 법과 제도로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개별 정책이 아니라, 교육정책을 만드는 방식 그 자체에 있다.
여기에 교육 리더십의 구조적 문제까지 겹쳐 있다. 교육계 전반에는 여전히 관료적 문화와 관행이 강하게 남아 있고, 변화보다 익숙한 방식을 선택해 온 관성이 교육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의 성공 공식에 기대는 리더십이다. 안정이라는 이름의 관행은 이제 교육 변화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관료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교육부와 교육청은 크고 수직적인 구조 탓에 변화에 둔감하다. 획일적인 지침은 교실을 억누르고, 학교운영의 자율성은 형식에 그치고 있다. 현장에서 교육부와 교육청을 '교육방해부', '교육방해청'이라 부르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고교학점제는 이러한 불통 교육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현장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도입하라는 반복된 보완 요구는 끝내 외면됐다. 교총의 2021년 설문조사에서 현장 교원의 72%가 '여건 미비'를 이유로 전면 도입에 반대했다. 이는 실제 교육현장에서 직접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이 보내는 명확한 경고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교원 증원과 행정·교육 시스템 보완이라는 선행 조건 없이 고교학점제를 강행했다. 그 결과 교실은 혼란에 빠졌고, 교사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을 떠안았으며, 학생들은 실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육정책에는 분명한 순서가 있다. 먼저 교사가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충분한 인력과 지원 체계를 구축한 뒤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교원 증원은 모든 교육개혁의 선행 원칙이다.
교육정책은 현장의 목소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형식적인 의견 수렴을 넘어, 교사·교장·교육전문가 등 현장 전문가가 정책 설계 단계부터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교육은 이상보다 현실이, 속도보다 신뢰가 먼저여야 한다.
교육부 조직의 관료적 성향은 인적 구성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교육부 전체 인력 695명 중 교육현장 출신의 교육전문직은 90여 명에 불과하고, 과장급 이상으로 올라가면 그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교육청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 구조에서 현장을 깊이 이해하는 정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학교는 이미 교육기관임에도 상담·복지·사법·행정 기능까지 떠안고 있다. 그 결과 교사는 교육 전문가가 되기보다 행정의 달인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고, 이는 결국 학생의 배움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 행정 중심의 관성과 관행을 분명히 끊어내야 한다. 교육의 중심은 다시 학교여야 한다. 학교를 배제한 교육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누구나 교육을 말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교육을 설계할 자격은 없다. 학교 현실에 대한 이해 없이 시작된 정책은 예외 없이 교실에서 무너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을 교육답게, 학교를 학교답게 바로 세우는 결단이다.
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juho7611@hanmail.net
◆강주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 교총 청년위원회 분과위원장,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교육정책연구소 이사장, 한국교육신문사 대표, 한국교총장학회 이사장· 등을 겸직하고 있다. 목원대 졸업 후 경상국립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뒤 2014년부터 경남 진주동중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2024년 12월 최연소로 제40대 교총회장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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