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와 봄·여름·가을·겨울 ‘동고동락’, 사계절을 함께 겪고서야…넌 내 ‘집’이 됐어

2024-07-06

캠핑카가 집이 되기까지는 모든 계절이 필요했다. 원래 아무리 사전 조사를 해도 현실은 상상과 다르기 마련이다. 원래 야외 예능 버라이어티는 신나게 봤지만 실외에서 잔다는 건 선택지에 없었던 가족이 캠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캠핑카 덕분이었다. 밖에서 요리하고 싶은 아내, 기계를 좋아하는 남편, 자연에서 뛰놀고 싶은 아이. 전국을 누비고 싶지만 잠은 편하게 자고 싶고, 기동성은 좋고 자유롭고 싶은 가족에게 펼치면 캠핑, 달리면 여행이 되는 캠핑카는 딱 꽂히는(?) 순간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존재였다.

캠핑카를 예약하면 출고되기까지 약 반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을 너무나 즐기는 우리는 캠핑카를 관리 및 보수하고 여행을 다니는 법에 대한 모든 유튜브 영상을 섭렵했고, 출고 당일에는 긴 시간에 걸쳐 캠핑카 오너가 알아야 할 지식을 배웠다. 캠핑카에서 사용하는 물은 어디서 받고, 사용한 오수는 어디에 버리며, 내비게이션은 대형 차량 모드로 변경하면 안전한 경로로 안내해준다 등이다. 좋아, 준비됐어! 인생은 실전이지, 가자!

하지만 습득한 모든 지식을 몸으로 익히는 데에는 앞서 말했듯이, 모든 계절이 필요하다. 우선 캠핑카라고 해서 아무 데나 주차하고 캠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캠핑카가 들어갈 수 있는 캠핑장을 열심히 찾아야 한다. 캠핑카와 카라반, 트레일러처럼 너무 좁은 커브길은 들어갈 수 없고 주차 난도가 높은 레저차량은 받아주지 않는 캠핑장이 많다. 사용 가능한 사이트를 공지해둔 곳이 아니면 직접 문의해서 확인해야 하고, 추가금을 받는 곳도 있다. 물론 추가금을 받더라도 받아주면 감사한 일이다.

캠핑카에 대해 눈으로 배운 지식

몸으로 익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

‘어디로든’의 자유, 그제야 내 것

편안한 ‘집’에서 즐기는 편한 ‘밥’

10분 요리 ‘필리 치즈스테이크’

한가한 하루 속 최고의 메뉴

어디서나 씻고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것이 캠핑카의 장점이지만 온 가족이 하루에 쓰는 물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서 급수 방법을 터득하는 데에도 여러 달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또 하나, 캠핑카도 겨울이면 동파 사고가 일어난다! 그래서 영하로 내려가기 전에 모든 물을 빼야 하고, 겨울에는 화장실은 써도 씻을 수는 없으며, 초봄에 기온이 어느 정도로 올라가야 물을 쓰기 시작해도 안전한지 가늠하며 한 해가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친 사고도 가지가지다. 냉장고 전원을 내리지 않아서 방전이 되어 불이 안 켜지고(AS센터로 직행했다), 수평을 유지해주는 지지대인 아우트리거를 올리지 않고 출발해서 휘어버린 적도 있으며(다시 후진해서 폈다), 에어컨을 켜다 배터리 용량이 부족해서 급하게 근처 호텔을 찾아 들어간 적도 있다. 해프닝에 불과한 즐거운 사고였지만 캠핑카를 모시고 사는 기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올해 초여름, 갑자기 징검다리 휴일이 긴 연휴로 변경되어 아무런 계획 없이 여행을 떠났다. 일찍 떠나려다 야근이 잡혀 출발도 다음날로 늦춰지고, 격무와 과로에 시달려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빈 캠핑장이나 호텔을 찾기도 지친 순간이었다. 교통 체증을 뚫고 달리다 보니 도착한 곳은 경포대였다. 잠시 파도를 감상하다 밥을 어디서 먹을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펼쳤다. 원래 어디를 가든 ‘숨겨진 맛집’과 ‘떠오르는 핫플’을 미리 서치하지만, 그런 완벽해야 하는 일상에 염증을 느껴 어디든 즉흥적으로 들어가겠다고 마음먹은 차였다.

출발은 강릉이었지만 잠시간의 검색 후 닿은 곳은 주문진의 한 막국숫집이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 가장 입맛에 맞는 물막국수와 수육, 가자미식해를 먹고 주문진 해수욕장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종일 차에 갇혀 있느라 고생한 아이는 곧장 벙커 침대에 콕 박혀서 뒹굴었고, 나는 경포대보다 고운 모래라 고향 해운대가 생각나는 주문진 해수욕장을 거닐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 해파랑길 41코스에서 러닝을 해야지. 아침은 생선구이를 먹고, 친구가 강릉에 연 카페에 깜짝 방문을 해야지. 바닷바람을 맞으니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던 여행 계획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다시 캠핑카에 오르니 이미 안방처럼 누워 호두과자를 먹으며 놀던 가족이 나를 반긴다. 마치 우리 집이 이곳, 주문진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모시고 다니던 캠핑카가 비로소 달리는 집이 된 것이다.

캠핑카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도가 높고 기동성이 좋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창문 밖의 풍경이 매일 달라진다. 오늘은 영월의 단풍이 물든 숲속, 내일은 속초 해수욕장을 눈앞에 두고 잠에서 깰 수 있다. 정박하면 캠핑이 되고, 발길 닿는 곳으로 달리면 여행이 되고, 주차하고 누우면 집이 된다. 갈 곳이 멀면 하룻밤 정도는 휴게소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들기도 한다. (당연하지만 캠핑장 외의 장소에서는 취사 금지, 외부에 캠핑 세팅 금지, 쓰레기는 모두 가지고 돌아갈 것을 반드시 지킨다. 매너 있는 캠퍼가 됩시다.)

가끔 퇴근 후에 곧장 짐을 싸 달리다 보면 피로가 극한에 달해 왜 집을 두고 밖에서 사서 고생을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이제는 안다. 다음날 일어나서 창문을 열면 반드시 떠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그 순간을 위해 달려왔다는 것을. 캠핑카에서 맞이하는 아침을 위해 주중을 버텨왔다는 사실을.

들고 먹는 캠핑밥, 필리 치즈스테이크

밖에서 요리하는 것을 무엇보다 즐기지만, 가끔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밥을 차리고 싶다. 여행이라 해도 모든 끼니를 사 먹기는 힘들고, 제한적인 공간에서 최대한 맛있는 무언가를 함께 먹고 싶을 때다. 거창한 음식만 차릴 줄 아는 것이 요리 잘하는 사람은 아니지. 편하게 뒹굴고 싶을 때는 10분 만에 만들어서 상 차릴 것도 없이 들고 먹어도 신나는 레시피가 필요하다. 그럴 때 준비하는 것이 필리 치즈스테이크다. 말하자면 치즈 불고기 핫도그라고 할 수 있겠다.

스테이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 필리 치즈스테이크는 아주 얇게 저민 불고깃감 소고기를 양파와 함께 달달 볶아서 소금, 후추에 치즈를 넣어 양념한다. 복잡한 향신료가 필요하지도 않고, 다양한 채소를 따로 준비해야 완성되는 것도 아니고, 핫도그 번만 있으면 왠지 특별한 기분으로 아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왜 스테이크라고 부르는가 하면 원래 스테이크 고기를 잘게 썰어서 만들었다는 등 이런저런 설화가 있기는 한데, 출처가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고기 맛이 제대로 느껴지는 필라델피아의 고전 메뉴라는 점만은 확실하다.

서양에서야 이렇게 얇게 썬 소고기를 어디서 구하는지부터 설명하지만 우리는 불고깃감을 구입하면 된다. 그리고 치즈와 양파, 핫도그 번을 준비하면 끝이다. 치즈는 원래 프로볼로네를 사용하지만 하우다나 그뤼에르처럼 잘 녹고 약간 ‘꼬릿한’ 향이 나는 것이 잘 어울린다. 잘 녹아서 고기와 양파를 한 덩어리로 뭉쳐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채 썬 양파와 고기를 달달 볶은 다음 맛의 포인트인 소금과 후추, 치즈를 넉넉하게 넣고 섞는다. 버터에 살짝 구운 핫도그 번에 끼워서 여기저기 널브러져 쉬는 가족이 저마다 손에 들고 편하게 먹게 한다.

맥주나 제로 콜라, 감자칩과 피클을 곁들여도 좋다. 사실 불고깃감에 간장과 설탕으로 불고기 양념을 해서 치즈와 함께 번에 넣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한가롭게 반쯤 누워서 이것만 먹어도 맛있는 메뉴라는 것이다. 한없이 늘어지는 한가한 시간에, 한없이 해이하게 만들어낸 맛있는 음식. 캠핑에는 이런 순간이 필요하다. 완벽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움직이며, 접시도 격식도 필요 없는 한가로운 시간. 어디에 있어도 그곳이 집이 되는 순간이다.

▷재료

불고깃감(소고기) 300g, 양파 1/2개, 프로볼로네 치즈(슬라이스) 4장, 소금, 후추, 핫도그 번 2개, 버터·식용유 약간

▷만드는 법

1. 그리들이나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소고기와 양파를 넣은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볶는다. 너무 자주 뒤적이지 말고 군데군데 제대로 갈색이 되도록 골고루 익힌다.

2. 다른 팬에 버터를 두르고 반 가른 핫도그 번 단면이 아래로 가도록 올려 노릇하게 굽는다. 설거지를 줄이려면 고기를 볶기 전 그리들에 굽는다.

3. 다 익은 소고기와 양파에 프로볼로네 치즈를 넉넉히 넣고 골고루 버무려서 한 덩어리가 되면 핫도그 번에 나누어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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