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학자 김기협 "사이비 뉴라이트가 이 땅의 보수 죽인다" [더 인터뷰]

2024-10-09

역사학자 김기협. 그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로 규정한다. “불가피한 변화를 최대한 원만하게 받아들여 부득이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태도 때문”이다. 문명사의 관점에서 동아시아사를 연구해 온 그가 유독 공을 들이는 주제가 ‘뉴라이트'다. 2008년 펴낸『뉴라이트 비판』이 이달 말 새 표지를 입고 재출간된다. 8·15 광복절부터 국정감사까지 ‘뉴라이트’논쟁이 대한민국을 반으로 쪼개고 있는 상황에서 16년만에 다시 던지는 화두는 “다시 묻는다. 이 땅의 보수를 죽이려는가”다. “뉴라이트를 극복해야 보수가 살아난다”는 주장의 이유를 들어봤다.

역사학자 김기협(74)은 서울대 이공계 수석으로 물리학과에 입학한 뒤 사학과로 전과한, 드문 이력의 역사학자다. 문명사의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역사와 동아시아 역사를 오랫동안 연구했고, 최근엔 남양사(南洋史·동남아시아사) 연구에 몰두 중이다.

그런 그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미시적으로 연구한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뉴라이트’다. 그는 『뉴라이트 비판』(2008년)에서 “뉴라이트의 목적은 진보 진영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합리적 보수의 봉쇄”라고 분석했다. “진보와 경쟁해 국민을 설득하려는 것이라면 진보와 공유할 수 있는 상식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뉴라이트가 실제 문화 헤게모니를 획득한 것은 보수 진영의 기존 조직인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내에서일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뉴라이트'를 둘러싼 논란은 그가 첫 화두를 던졌던 2008년 못지않게 뜨겁고 격렬하다. 8·15 광복절의 ‘반쪽 기념식’을 비롯해 이 문제가 전 국민을 둘로 갈라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반일 종족주의』 공동저자)과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공동저자) 같은 뉴라이트 출신 공직자들이 임명될 때마다 정치권이 들썩댔다. 그 회오리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등 현직 국무위원 레벨로까지 번졌다. 지난 7일 인천 서구의 자택으로 김기협을 찾은 건 이런 흉흉한 사정 때문이다. 인터뷰는 자택 인근 커피숍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일제 시대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는 김문수 장관 발언이 논란거리였다.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받아들였나.

“형식적 국적을 ‘대(大)일본국’으로 받아들인 선조들의 심정은 지금 대한민국 국적을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과 크게 달랐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화하는 것은 대립을 촉발하는 첩경이다. 임명권자에게 부여받은 자기 임무가 ‘대립 격화’에 있다고 확신하는 모양이다.”

‘뉴라이트 시즌 2’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내가 보기엔 ‘사이비 시즌 2’다. 합리적 보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하이퍼내셔널리즘(hyper-nationalism·과잉민족주의)의 반성이 중요한 과제다. 대한민국 건국이 1919년과 1948년 중 언제인가.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국적은 대한민국인가, 대일본국인가. 이런 질문에 하이퍼내셔널리즘은 하나의 정답만 있다고 주장한다. 진지한 보수주의자는 그 정답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문제를 고민한다. 아무 고민 없이 그 반대쪽을 ‘확고한 정답’이라고 우기고 나서는 자들은 사이비다.”

‘시즌 2’라고 하지만, 20년 전과는 다르다. 뉴라이트로 지목받으면 다들 “나는 아니다”라고 부인한다.

“뉴라이트라는 이름이 처음 나올 때는 ‘새로운 보수’, ‘건전한 보수’, ‘합리적 보수’가 될 수 있다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그들의 행적은 전혀 달랐다. 새로운 보수를 지향하는 목적의식은 사라졌고, 대립의 격화에 매진하는 타락한 행태만 남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상한 것들’이란 인상만 가지게 된 거다.”

안병직·이영훈 교수 등 이른바 뉴라이트 학자들의 책을 폭넓게 분석했다. 학문적으로는 어떻게 평가하나.

“사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같은 책을 보면 일부 좋은 논문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걸 이용하는 해설자들이 아전인수식으로 현실 정치적 함의만을 지향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던 분들은 (뉴라이트에서) 떠났고, ‘역사학자라고 하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이런 느낌이 드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가 2008년 펴낸 『뉴라이트 비판』은 이달 중 재판(再版) 형태로 다시 서점가에 나온다. 뉴라이트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면서 출판사에서 신규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다. 그는 “시사에 쏠린 책이라 역사학자에겐 의붓자식 같지만, 실제로는 역사에 대한 제 생각을 오롯이 담은 책이라 아끼는 마음이 있다”고 소개했다.

뉴라이트는 ‘반공주의’ 대신 ‘자유주의’를 보수의 핵심 가치로 삼자는 기획이다. 의도 자체는 선한 것 아닌가.

“반공주의보다 생산적인 방향이라고 볼 수는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자체의 한계도 있다. 제1·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도 타협적인 방향이 주류가 됐는데, 1970년대 들어 자유 방임주의에 가까운 ‘신자유주의’가 나타났다. 신자유주의는 냉전 시대 자본주의 진영 승리엔 기여했지만, 인류 전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단계에선 역효과를 가져오다 보니 몰락했다. 자유주의도 조심스럽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反)국가 세력’, ‘반대한민국 세력’ 같은 용어를 많이 쓴다. 자유주의의 역설인가.

“내가 보기엔 자유주의나 보수주의가 아닌 기회주의로 봐야 한다. 이 정부는 착실한 노력을 통해 어떤 성과를 쌓겠다는 게 아니라, 화끈한 싸움을 통해서 승리를 거두겠다는 심산 아닌가. 반국가 세력이니 하면서 없는 적을 만드는 것 역시, 돈키호테의 풍차처럼 무언가 돌진할 상대를 만들어야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뉴라이트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나.

“지금의 사이비 사태는 정치를 비롯해 사회의 모든 부분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 그중 치명적 피해를 당하는 것이 보수 이념이고 보수 진영이다.”

어째서 보수가 더 타격을 입는가

“다른 부문의 피해는 원인이 제거되면 바로 치유되는 외상(外傷)이다. 보수 쪽 피해는 속이 망가지는 내상(內傷)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보수를 죽이려 하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김기협은 이른바 ‘KS’(경기고-서울대) 출신 엘리트다. 서울대 사학과 조교수를 지내다 6·25 시기에 사고로 숨진 역사학자 김성칠과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국어학자 이남덕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로 지칭하는 김기협은 “뉴라이트로 인해 보수주의 이념의 발전이 가로막혔다”고 지적했다.

당신은 보수주의자인가.

“그렇다. 왜냐고 묻는다면 겁이 많아서라고 할 수 있다. (웃음)“

무슨 뜻인가.

“보수주의를 정의하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나는 변화에 대한 태도를 핵심으로 본다. ‘보수’는 일체의 변화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불가피한 변화를 최대한 원만하게 받아들여 부득이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을 찾는 자세다.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는 제대로 된 보수의 기본 자격이다. 그런데 사이비들은 겸손하지 않고 자신감만 넘친다. 보수의 이름을 이용만 할 뿐, 보수 의제의 성취에는 관심이 없다.”

제대로 된 보수가 한국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을까.

“과거 한국에는 일체의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파가 보수의 이름을 참칭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보수의 새 역할에 대한 필요가 생겼고, 뉴라이트 운동에 나선 사람들도 그런 인식이 없진 않았다. 이들의 존재가 드러나자마자 정쟁의 소모품이 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이 사회에는 ‘건전한 보수’에 대한 수요가 있고, 그 수요는 그동안 더 커졌다고 본다.”

건전한 보수는 누가 대표할 수 있을까.

“지금 보수 진영에선 검찰권이 큰 몫을 맡고 있는데,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본다. 검찰권은 자기 기반을 못 가진 ‘틈새 권력’이다. 앞으로 경제 권력의 역할이 주목되는데, 민권(民權)과의 밀고 당기기가 오래 계속될 것 같다. 적절한 수준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너무 많은 고통을 유발하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보수의 역할이 되길 바란다.”

“지금은 검찰권을 가진 사람들인데,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향후 재력(財力)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회 진로를 좌우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이 나서면 어느 정도 정상 상태에 가깝게 되지 않을까. 재력이 사회를 이끌려는 시도와 이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려는 흐름이 밀고 당기기가 장기간 반복될 수 있다.”

김기협이 자신의 최대 연구성과로 꼽는 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집필한 10권 분량의 『해방일기』다. 국내에서 벌어진 좌우 대립 사건에 갇히지 않고, 당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해방 후 3년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일지 형식으로 담았다. 그가 이 작업에서 주목한 건 김규식(중도 우파)과 여운형(중도 좌파)의 역할이었다. 그는 “계층의 이익에 집착한 극우파도, 이념에 매달린 극좌파도 국민의 염원을 실현하려는 ‘진짜’ 정치를 한 게 아니었다”며 “중간파는 당시 국민의 정치적 염원, 즉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대변했다. 실제로는 중간파 대 극단파(극좌와 극우)의 대립, 즉 ‘중극(中極) 대립’ 구도가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좌우로 쪼개진 대한민국을 해방 직후와 비교하는 시각이 많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희망이 늘었다.”

왜 낙관하는가.

“해방 직후에도 진정한 정치는 성립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정치가 권력 싸움으로 흘러가게 만든 조건은 (미국·소련 등) 외부에서 강력하게 주어졌다. 지금 한국 정치의 문제는 일종의 관성처럼 흘러와 스스로 못난 꼴을 보일 뿐이다. 이걸 지속하게 하는 외부 동력은 크지 않다. 정치권의 변화가 너무 더딜 뿐이다.”

정치권에선 늘 변화를 외치는데.

“정치권에도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런 노력보다는 ‘우리가 도로 권력을 가져와야지’라거나 ‘빼앗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우선시되고 있다. 내가 정치학자는 아니지만, 소선거구제 같은 제도는 고칠 때가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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